[대한민국 도시 이야기-부산 해운대구]

온천으로 유명했던 어촌, 1970년대 백사장 개발 후 최고 피서지로

입력 2016-07-18 17:22 수정 2016-07-19 03:15

지면 지면정보

2016-07-19A11면

도시브랜드가 경쟁력이다 - '한국의 홍콩' 부산 해운대구 <상>

사진으로 본 해운대
해운대(海雲臺)라는 이름은 신라 말 석학 고운 최치원의 자(字) 해운(海雲)에서 따온 것이다. 최치원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경남 합천)으로 가던 중 해운대에 들렀다가 절경에 심취돼 떠나지 못하고 머무르며 동백섬 남쪽 암벽에 해운대라는 글자를 새기면서 이곳의 지명이 됐다는 설이 전해진다. 지금도 동백섬 암벽에서 이 글자를 찾아볼 수 있다.

해운대는 예로부터 산과 바다, 강을 모두 품고 있는 ‘삼포지향(三抱之鄕)’의 명당으로 불렸다. 해운대의 진산(鎭山)인 장산(해발 634m)과 남해, 장산에서 발원해 바다로 유입되는 하천인 춘천(春川)을 품고 있어서다. 해운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달맞이언덕 정상에 있는 해월정 앞바다는 남해와 동해가 만나는 곳이다.
삼포지향에 온천을 더해 해운대를 ‘사포지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통일신라시대 진성여왕이 해운대에서 온천욕을 하고 난 뒤 천연두가 나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온천이 솟아나는 곳을 거북이 많이 사는 구남벌이라고 불렀는데, 해운대 온천은 예로부터 구남온천(龜南溫泉)으로 불렸다. 지금도 해운대구엔 구남로라는 도로 지명이 남아있다.

1960년대 해운대해수욕장 모습

구한말까지 동래군에 속했던 해운대는 바닷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살지 않는 갈대밭이 대부분이었다. 1910년대 후반부터 일본인들이 해운대 온천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온천을 중심으로 주거지역과 상권이 형성됐다. 일본인이 세운 해운대온천합자회사는 1953년 현 해운대구청 자리에 온천 욕탕과 숙박시설을 갖춘 대규모 온천 여관을 조성했다. 지금도 해운대구청에는 당시 온천 원형이 연못 형태로 남아 있다.

1980년대 수영만매립지(현 마린시티) 모습

광복 이후에도 해운대는 온천을 중심으로 주거 및 상업 지역이 자리 잡았다. 해운대의 옛 도심인 중동은 일제강점기 때 온천이 집중적으로 개발된 곳이다. 해운대 백사장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해운대해수욕장 개발이 시작됐다. 인근엔 호텔과 콘도 등 숙박시설과 함께 상가들이 들어섰다. 1994년에는 해운대관광특구로 지정되면서 해운대 개발이 탄력을 받았다.

부산=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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