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교수 강의 '노예 기억의 정치'

당시 일본인과 임금차 거의 없어
임금 한 푼 받지 않았다는건 거짓
'묻지마 보상' 전 학술연구 이뤄져야
“일본 강점기와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이 한국인에게 무엇을 의미했던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영훈 교수(서울대 경제학)는 지난 5일 정규재tv ‘노예 기억의 정치’편에서 강제 징용이 지니는 의미를 논평했다. 이 교수는 많은 한국인이 생각하는 강제 징용의 실상과 역사, 보상에 대한 견해까지 자세히 설명했다.

다수의 한국인은 강제 징용을 당해 갖은 고통과 핍박을 받았지만 임금은 한푼도 받지 못하는 식의 노예생활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 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제시대 모든 동원을 강제 동원으로 규정했다”며 “강제 동원 피해자가 신고하면 일정 금액을 보상하겠다고 하자 많은 피해자의 증언이 변질돼 노예의 기억이 탄생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질주의적인 방식으로밖에 과거사를 청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노예 기억의 특질”이라고 말했다.
강제 징용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한푼도 못 받은 것은 아니었다. 이 교수는 동료연구자인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박사의 논문 ‘전시기 일본으로 동원된 조선인 탄광부의 임금과 민족 간 격차’도 소개했다. 이 논문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 징용자의 평균 임금은 71.95엔이었다. 이 중 18.6%에 해당하는 13.37엔은 저축금이었고, 34.5%에 해당하는 24.84엔은 한국으로 송금해 가족을 부양했다. 이 교수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수당 차이도 별로 없었다”며 “심지어 일본인보다 더 많이 받는 조선인도 존재했다”고 말했다. “이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차별이 아니라 숙련 수준 차였다”고 강조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미지급금은 1945년 8월5일 해방 전 몇 개월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앞서 강제 징용 생존자 50여명을 인터뷰했다.

이 교수는 진정한 의미의 과거사 청산을 위해서라면 물질적 보상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 첫째가 진상 규명을 위한 학술연구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조선인 노무자 미수금의 경우 다수가 1945년 광복 전 3개월 정도 수준이었다. 이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단지 신청만으로 보상이 이뤄지는 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강제 징집과 자발적 지원의 간극 해소다. 자원입대한 사례도 강제 징집으로 분류해 그 자손이 정부로부터 보상받는 문제점은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그 시대 사람들은 노예가 아니었다”며 “그들을 노예로 만든 것은 현대인의 정치”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의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와 위로받을 수 있으려면 한국인이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진 정규재뉴스 PD starhaw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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