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아버지·어머니 절절하게 그리겠다"

입력 2016-06-27 18:09 수정 2016-06-27 23:38

지면 지면정보

2016-06-28A34면

프랑스 연극 '아버지' '어머니' 내달 명동예술극장서 교차공연

박근형·윤소정 주인공 맡아…노령화·치매 문제 등 다뤄
치매에 걸린 아버지,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선 노년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낸 연극 두 편이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프랑스 젊은 극작가 플로리앙 젤레르가 쓴 ‘아버지’(연출 박정희)와 ‘어머니’(연출 이병훈)가 다음달 13일부터 8월14일까지 평일에는 하루걸러, 주말엔 오후 3시와 7시30분 교대로 같은 무대에 오른다. 젤레르는 고령화와 치매, 빈둥지증후군 등을 내밀하게 묘사하며 주목받았고, 그의 팬을 일컫는 ‘젤레르주의자’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두 작품은 프랑스 최고 연극상인 몰리에르상 작품상(아버지)과 여우주연상(어머니)을 받았다. 두 연극을 제작한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은 “두 작품은 2년의 시간차를 두고 쓰여졌지만 고통받는 모성애와 부성애를 음악의 대위법처럼 병렬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며 “두 작품을 한꺼번에 비교해서 볼 때 더 강렬한 연극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장인 명동예술극장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주인공 박근형(76)과 윤소정(72)을 만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박근형…치매로 소멸해가는 아버지

연극 ‘아버지’의 박근형

“대본을 읽자마자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드라마 등 일정도 모두 조율했죠. 연극은 저의 ‘모태’거든요. 공연장에 갈 때마다 ‘나는 언제 또 무대에 서나’라고 생각했어요. 무슨 작품을 한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함께하고 싶은 욕망이 늘 있었죠.”

박근형은 권위적이던 아버지 앙드레가 치매에 걸려 소멸해가는 과정을 연기한다. 1958년 18세에 마냥 연기하는 것이 좋아 연극배우의 길에 발을 들인 그는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 배우가 됐다. 치매 연기만 이번이 세 번째다. “아버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작품입니다. 저도 그동안 제 욕심 차리느라 좋아하는 일만 하다 보니 가정에 불행을 가져다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치매에 걸린 그에게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겹친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고, 더 이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대목에선 눈물이 쏟아졌다”고 했다.

‘아버지’는 올해 영국과 미국에서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들이 각각 올리비에상 연기상, 토니상 남우주연상을 받아 화제가 된 작품이다. 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까.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연극이 제 인생의 꽃을 피워 줬듯, 저의 마지막 가는 길도 연극으로 꽃을 피웠으면 하거든요.”

◆윤소정…깊은 상실감에 빠진 어머니

연극 ‘어머니’의 윤소정

“쉬운 작품은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그러다 이번 희곡을 읽었는데, 배우로서 도전의식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연습을 하다 보니 배역이 너무 어려워 ‘주제 파악을 잘 못 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신경성 위염까지 걸렸어요. 하하. 그래도 이런 고통이 없으면 작업하는 의미가 없죠.”
윤소정은 남편과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바쳤지만, 모두가 떠난 뒤 정체성을 잃어버린 중년 여성 안느의 깊은 상실감을 그린다. “아내는 평생 가족을 위해서 살아요. 그건 희생이 아니라 즐거움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은 바람이 나고, 아들도 여자를 만나 떠나자 더 이상 무언가를 해줄 상대가 없어지는 거예요. ‘행복할 거리’가 없어지는 거죠.”

극 중 안느는 빨간 드레스에 집착한다. 윤소정은 “빨간색은 피, 생명 등을 상징한다”며 “폐경으로 상실감을 느끼는 그가 어떻게든 남편과 아들의 사랑을 되찾고 싶어 하는 간절함 같은 것이 마음에 와 닿는다”고 설명했다.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그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을까. “극 중 주인공 나이가 47세인데, 저도 그 나이를 거쳐 왔어요. 아이들은 자라면 부모를 떠나는 게 순리예요. 그런데 그 순간이 닥치면 견디기가 무척 어려워지죠. 중년 여성들이 자식들이 떠나도 끝까지 자기가 즐길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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