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53) 시장가격에 대한 이해

입력 2016-06-24 16:52 수정 2016-07-01 16:46

지면 지면정보

2016-06-27S9면

생산비용 따라 가격 정하라는 시장 개입

기업 원가절감·창조적 혁신
가로막아 비효율 초래

글·그림 등 지식 생산물처럼 공산품도 시장 수급 따라 가격결정
원가 낮췄다고 가격 내리라고 하면 기술개발 매진할 기업 없을 것
서양화를 그리는 친구에게 있었던 일이다. 이름이 제법 알려져 그림값이 비싼 축에 속하는 이 화가에게 어느 날 사업하는 동창생이 찾아왔다. 동창생은 그림 한 점을 시중에서 거래되는 가격의 절반쯤에 달라고 했다. 화가는 잠시 고민 끝에 거절했다. 선물로 줄 수는 있어도 사적 인연 때문에 시장에서 형성된 자기 그림 가격을 스스로 어지럽힐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동창생은 자신을 특별히 우대하지 않는 화가에게 은근히 부아가 났던지 “재료값도 얼마 안 될 텐데 그쯤 못 깎아줄 게 뭐냐”고 압박했다. 화가의 대답이 은근했다. “그렇게 치면 먹으로만 그리고 여백의 미까지 넉넉한 수묵화가 채색화보다 원가는 훨씬 덜 먹힐 게다. 그런데도 내 그림보다 비싼 수묵화가 많은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술작품의 가격이 물감, 종이, 붓 등의 재료와 작가의 노동투입 시간에 연동돼야 공정하다고 믿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림에 그다지 소질이 없는 경제학자가 일반 화가보다 비싼 재료를 사용하고 열 배의 공과 시간을 더 들여 그림 한 점을 완성했다고 하자. 그래서 경제학자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그린 작품이기 때문에 비싼 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가족 외에) 누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겠는가. 글, 그림 등의 지식 생산물뿐만 아니라 공산품 가격도 투입비용에 비례하지 않는다. 1만원을 들여 제작한 제품도 원하는 이가 없으면 1000원도 받지 못한 채 폐기되는가 하면, 반대로 원가는 1000원을 밑돌아도 쓸모가 많고 원하는 이가 많으면 1만원에도 날개 돋친 듯 팔리는 것이 시장원리다.

공급자의 생산비용만으로 상품 가격이 결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제학원론에서는 시장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에서 가격과 거래량이 결정된다고 누누이 가르치고 있다. 명색이 사업가라는데 화가의 동창생이 설마 이를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작비용 운운하며 비싸다고 했던 것은 혹시라도 가격 흥정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전략적 수사(修辭)였을 수도 있다. 동창생의 진의를 알 방법은 없다. 그렇지만 원가를 공개하라, 납품단가를 원가에 연동해 달라는 등의 주장이 빈번하게 제기되는 상황에서 그냥 웃어넘길 일만도 아닌 것 같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실제로 우리 사회 전반에서 시장 가격이 결정되는 원리에 대한 오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필자가 여론조사 전문업체에 의뢰해서 2000명을 대상으로 경제 IQ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 국민의 약 20%만이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공급자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응답이 44%로 가장 많았고, 생산비용이 가격을 결정한다는 응답은 17%에 이른다. 직업별로는 공무원과 대기업 종사자 사이에서 공급자가 가격을 결정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각각 54%와 51%로 가장 높았다. 학력이 높다고 시장원리에 대한 이해가 높은 것도 아니었다. 성별로 나눠보면 여성이 소비활동을 주도하면서 시장거래에 대한 경험이 많기 때문인지 남성보다는 여성이 가격의 결정원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이와 같이 시장 가격에 대한 이해가 낮은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육과정에 문제가 있고,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 경로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서구에서는 시민혁명 등을 통해 오랜 세월에 걸쳐 국가의 통제와 개입으로부터 재산권 보호, 계약 자유를 비롯한 경제적 자유를 쟁취했다. 그러나 우리는 가부장적 국가주의 전통 아래 자본주의 제도를 수용했고 그나마도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탓에 경제적 자유에 대한 인식이 서구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비근한 예로 현 정부 초기에 법무부가 중심이 돼 상속 관련 민법을 개정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 고인(故人)의 자유의사(유언)와 무관하게 상속 재산 중 절반을 무조건 생존 배우자에게 주게끔 강제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던 것인데, 비록 무산되기는 했지만 이 사례는 재산권과 계약의 자유에 대한 한국 정부 시각이 어떤지를 여실하게 보여줬다.

원인이 무엇이든 시장 가격에 대한 오해는 개인적 인식의 오류에 그치지 않는다. 입법과정과 규제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국가에 의한 가격통제를 부추기고 그 결과 소비자 피해 및 시장 위축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의 규제 현황을 보면 상품 및 서비스의 가격에서부터 이자율, 임대료 등 거의 모든 시장에서 정부규제와 행정지도가 성행하고 있다. 경제 회생을 위해서는 규제개혁이 최우선 과제라고 떠드는 와중에도 소비자인 국민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가격규제는 늘고 있다.
서적의 할인 경쟁을 막겠다고 도입한 도서정가제, 통신 단말기 보조금 차별 경쟁을 막겠다고 도입한 단통법이 그런 경우다. 같은 상품이라 해도 장소, 시간, 조건이 다르면 가격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또 달라야 한다. 같은 시간에 이웃한 주유소 간에도 휘발유 가격은 다를 수 있고, 마트마다 파는 물건 가격이 다를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왜 서적과 단말기는 전국 어디서나 비슷해야 한다며 정부가 규제하는 것일까.

화가의 동창생처럼 많은 사람이 가격은 원가에 연동해서 결정되는 것이 공정한 것처럼 주장한다. 특히 기업 간 거래에서 납품단가를 원가 및 물가상승에 연동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제3자의 개입으로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납품단가를 원가에 연동하는 것은 앞의 예에서 보듯이 시장원리에 반해 비효율을 초래할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공정하지도 않다.

협력업체가 기술개발과 혁신활동을 통해 원가를 낮췄을 때 그만큼 단가를 인하해야 한다면 어느 협력업체도 원가절감 노력을 열심히 할 유인이 사라지게 된다. 원가연동제는 혁신에 투자하는 기업에 보상이 아니라 불이익을 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불공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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