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국판 항해조례'의 추억

입력 2016-06-16 17:36 수정 2016-06-17 00:14

지면 지면정보

2016-06-17A34면

오형주 경제부 기자 ohj@hankyung.com
미국 정부는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3차 한·미 해운협력회의에서 “한국산 자동차 수출 시 미국 배를 이용해 달라”고 요구했다(본지 16일자 A1면 참조). 미국이 해운 등 전방위로 통상 압력을 확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불거진 배경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17세기 영국의 항해조례(The Navigation Act)가 연상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1651년 올리버 크롬웰이 이끄는 잉글랜드 공화제 정부는 유럽 바깥에서 잉글랜드와 그 식민지로 수출품을 싣고 오는 건 오직 잉글랜드인 선원이 절반 이상 탑승한 ‘잉글랜드배’로만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항해조례를 선포했다.

잉글랜드의 항해조례는 당시 해상교역에서 막대한 이득을 누리던 네덜란드를 견제하기 위해 추진됐다. 네덜란드의 반발에 양국은 이듬해인 1652년부터 1667년까지 두 차례나 전쟁(1·2차 영란전쟁)을 벌이며 치열하게 제해권(制海權)을 다퉜다. 영국의 항해조례는 자유무역론이 득세한 1849년에야 폐지됐다.
영국의 항해조례는 20세기 들어 미국에서 되살아났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20년 미국의 연안 여객과 화물 운송은 자국 선박이 도맡아야 한다는 내용의 존스법(Jones Act)을 제정했다. 종전 후 쓸모가 없어진 해군 수송선을 활용하고 제대군인 등을 배려해야 한다는 명분에서였다. 세계무역기구(WTO)와 각국의 철폐 요구가 끊이지 않았지만 미국은 오늘날까지 존스법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미국 정부의 제안이 비어 있는 상태로 본국으로 복귀하는 자국 배를 한국차 수출 운송 용도로 내어주겠다는 순수한 선의에 의한 것일 수 있다. 한국 정부와 현대글로비스도 미국에 전략물자 수송권 등 반대급부를 역제안하며 협상에서 실리를 챙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과의 자동차 교역에서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는 점을 고려해 보전 차원에서 자국선 이용을 요청했다는 의혹을 떨치긴 어렵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늘 ‘자유무역’ 편이었다. 존스법 제정 후 미국의 조선·해운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침체 국면에 접어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 정부가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오형주 경제부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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