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에 '늦깎이 독립'…저평가 업체만 골라 M&A…'광고·마케팅 제왕' 되다

입력 2015-10-30 07:00 수정 2015-10-30 14:18

지면 지면정보

2015-10-30B3면

마틴 소렐 WPP그룹 회장
잘 나가던 최고재무책임자의 변신
영국 사치앤드사치 CFO로 명성…반복되는 일상에 '도전장'
바구니 만드는 회사 CEO로 취임

"죽기 전에 세계 최고 광고사 만들자"
공격적인 M&A로 3년간 18곳 인수
작년 111개국에 사무실 3000개…매출 115억파운드로 사상 최대

글로벌 최고경영자 '빅5'의 위엄
불경기에도 주가 5년 만에 두 배로…연봉 40% 스스로 인상해 750억 받아
"온라인 광고 비중 늘리려 고군분투"


미국 경영전문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지난 12일 ‘100대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를 발표했을 때 세간의 관심은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조스에게 쏠렸다. 지난해 1위에서 87위로 추락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제 광고업계에서는 5위로 선정된 인물이 단연 화제였다. 잘나가는 회사의 임원 자리를 과감히 때려치우고 개인사업을 시작한 지 30년 만에 ‘광고·마케팅업계의 제국’을 건설한 마틴 소렐 WPP그룹 회장(70)이다.

HBR에 따르면 소렐 회장은 환경 및 사회에 대한 기여, 기업 지배구조 등을 반영하는 정성평가에서 187위에 머물렀으나, 재무적 평가에서 15위를 기록해 종합 순위가 크게 올랐다. 소렐 회장은 세계 각국의 거물급 CEO를 뒤로하고 덴마크 헬스케어업체 노보 노르디스크의 라르스 레빈 쇠렌센 대표, 미국 통신업체 시스코시스템스의 존 챔버스 회장, 스페인 패션업체 인디텍스의 파블로 이슬라 회장, 독일 자동차부품업체 콘티넨털의 엘마 데겐하르트 회장과 함께 세계 5대 경영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HBR이 평가한 CEO는 모두 907명에 이른다.

사상 최대 실적 이어가는 WPP

소렐 회장이 이끄는 WPP그룹의 실적은 그만큼 탁월했다. 지난해 실적은 시장 전망치를 웃돌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도 소렐 회장을 가로막지 못했다. 지난해 세전 순이익은 전년보다 12% 증가한 14억5200만파운드(약 2조5200억원). 매출도 4.6% 늘어난 115억2900만파운드로 집계됐다. 실적은 올 들어 더욱 좋아졌다. 상반기 세전 순이익은 7억1000만파운드였고, 매출은 58억3900만파운드에 이르렀다. 주가도 꾸준히 상승세를 타고 있다. 5년 전 1주당 750파운드였던 주식이 지금은 1450파운드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WPP그룹의 실적 호조에 소렐 회장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남미, 중동 시장이 다소 침체됐지만 북미와 영국 시장이 살아났다”는 평가를 내놨다. 소렐 회장이 지구촌 전역을 거론하며 경영 실적을 평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영국에 본사를 둔 WPP그룹은 세계 최대의 광고·마케팅회사다. 111개국에 3000여개의 사무실이 있고 17만9000여명이 근무한다.

소렐 회장은 어떻게 ‘광고·마케팅업계의 제왕’이 됐을까. 1985년 마흔 살의 소렐 회장은 영국의 유명 광고회사인 사치앤드사치의 최고재무책임자(CFO)였다. 창업주 사치 형제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탄탄한 직장생활이 보장됐지만 갑자기 일상이 지루해졌다. 자기만의 회사를 세우고 싶어졌다.

그래서 WPP라는 회사에 투자했다. WPP는 와이어 앤드 플라스틱 프로덕트(Wire and Plastic Product)의 약자로, 말 그대로 철사와 플라스틱으로 쇼핑 바구니를 만드는 회사였다. 광고회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소렐 회장에게는 WPP가 무엇을 파는지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은 WPP를 지렛대 삼아 세계 최대 광고회사를 설립할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1986년, 그는 10년 남짓 일했던 사치앤드사치를 떠나 WPP의 CEO로 취임한다.

“죽기 전에 세계 최고 회사로 키우겠다”

소렐 회장의 전략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이었다. 그는 CEO를 맡은 뒤 3년 동안 18개의 광고·마케팅 회사를 사들였다. 1987년에는 150년 역사의 광고대행사 제이월터톰슨(JWT)을 3억6800만파운드에 인수했다. 당시 JWT의 매출 규모는 WPP의 13배에 달했다. 1989년에는 세계적 광고회사 오길비앤드매더를 WPP그룹의 우산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브랜드 파워가 좋지만 실적 악화로 고전하거나 저평가된 회사를 집중적으로 매입했다. 자회사로 편입하면 자금수혈과 구조조정으로 정상화시킨 다음 이를 기반으로 또 다른 회사 ‘사냥’에 나섰다. 위험한 방법이었다. 경제 상황이 예상대로 풀리지 않거나 부채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룹 전체가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었다. 다행히도 소렐 회장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적대적 인수합병이 계속되면서 광고업계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뭐가 문제냐는 투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학위까지 취득한 소렐 회장은 ‘죽기 전에 세계 최고의 회사를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M&A를 이어갔다.
2000년에는 영앤드루비컴을 집어삼켰고, 2005년과 2007년에는 그레이와 TNS를 각각 인수했다. 그룹 산하에 광고회사가 많다 보니 유니레버나 프록터앤드갬블(P&G)처럼 경쟁 관계에 있는 회사의 마케팅을 동시에 해주는 사례까지 나타날 정도다. 소렐 회장은 빼어난 경영 성과와 커뮤니케이션 업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다.

HBR이 세계 최정상급 경영자로 인정해줬지만 소렐 회장은 외부의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지난해 소렐 회장은 스스로 자신의 연봉을 40% 인상해 4300만파운드(약 750억원)를 받았다. 영국 FTSE100 기업 가운데 최고 연봉이다. 투자자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졌다. 투자자들은 2012년에도 그의 임금이 많다고 문제를 제기했으나 끄떡도 하지 않고 또다시 올린 것이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늦깎이 독립’을 했던 것처럼 하고 싶은 일을 강단 있게 밀어붙였던 그 모습 그대로다.

지금까지 소렐 회장은 전설적인 경영 수완을 발휘했지만 앞으로도 최고의 실적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난관이 많다는 지적이다. 외신들은 “온라인 광고를 차단하는 프로그램이 확산되고, 미국광고협회가 광고대행업체를 감시하기 위해 기업조사 전문회사를 고용하는 등 WPP그룹의 영업 환경이 나빠질 수 있다”며 “유럽연합(EU)의 취약한 성장세와 중동 지역 등의 정치적 불안정 등을 소렐 회장이 어떻게 이겨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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