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위미술 선구자' 이승택, 15일부터 갤러리 현대서 드로잉展

갤러리 현대를 찾은 관람객이 15일 공개될 이승택의 노끈 드로잉 ‘광장의 사람들’을 감상하고 있다.

한국 최초의 ‘아방가르드 미술가’로 평가받는 원로작가 이승택(82)은 물과 불, 바람, 연기 등 시각화하기 어려운 ‘비물질’을 조형화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기존의 미술 개념을 바꾸는 획기적인 작업 때문에 ‘미술계의 이단아’로 불리던 그는 2009년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제1회 수상자로 선정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세계 미술계에서 ‘파워 1위’로 꼽히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영국 런던 서펜타인갤러리 디렉터는 그를 “세계 미술사에 남을 독보적인 작가”라고 극찬했다.

세계적 미술사조와는 상관없이 독자성을 지닌 조형작업을 하는 이씨가 15일부터 다음달 18일까지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개인전을 연다. ‘드로잉’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1950년대부터 틈나는 대로 제작한 노끈 드로잉을 비롯해 밧줄을 이용한 입체 드로잉, 연필 드로잉 등 70여점을 보여준다.

그에게 노끈(줄) 드로잉은 미술의 조형적 기초 훈련이나 발전을 위한 표현 방법보다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향해 나아가는 도전이다. 줄을 통해 정체성과 자아, 사회적 이슈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그는 “드로잉은 작가의 영감이 시작되는 ‘감성의 블랙박스’ 같은 것”이라며 “작가의 예술을 시험하는 연습장”이라고 말했다. 왕성한 작가의 예술혼이 담겨 있기에 드로잉은 그 자체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는 얘기다.

전시장에 걸린 이씨의 작업들은 드로잉이 단순히 밑그림이라는 기존 관념에서 벗어나 ‘예술의 원초적 에너지’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가로·세로 5m 크기의 설치 드로잉 작품 ‘무제’는 1965년 노끈을 활용해 퍼포먼스한 작업을 소재로 최근 제작한 대작이다. 전시장 벽에 커다랗고 두꺼운 밧줄 여섯 가닥으로 현대인의 삶과 희망을 은유적으로 풀어냈다.

영국 테이트모던 소장품인 ‘고드렛돌’도 나온다. 작가가 1950년대 말 한국 전통 농기구인 고드렛돌에서 영감을 얻어 딱딱하고 무거운 돌멩이의 물성을 노끈에 매달아 반대로 물렁물렁하고 가볍게 보이도록 바꾼 작품이다. 돌이 지닌 역동적 물성과 노끈의 유연성을 활용해 억눌린 한(恨)을 풀어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형체 없는 조각으로 유명한 ‘바람’시리즈도 드로잉으로 만날 수 있다. 흰 종이에 빨간색의 바람 이미지를 드로잉한 작품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공간을 통해 우주의 생성과 변화, 소멸을 묘사했다. 작가는 바람을 빨간색으로 형상화해 공간과 자연의 ‘다름’과 ‘공존’에 대한 상생관계를 에둘러 설명했다. 노끈으로 사람의 형상을 표현해 화면에 붙인 ‘광장의 사람들’, 자신의 음모를 활용해 바람 날리기 축제를 표현한 작품, 노끈으로 여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작품, 종이에 연필로 세밀하게 작업한 작품 등도 드로잉 예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도형태 갤러리 현대 부사장은 “1990년대에 설치, 회화, 드로잉 등 활발한 외부활동으로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의 드로잉 세계를 통해 ‘인간 이승택의 색다른 예술세계’를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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