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통법과 위험한 관료주의

보조금 규제로 판매 경쟁 제한…시장 구조개편 없어
통신료는 年 5000원 절약, 기기값은 수십만원 더 부담
통신사 마케팅비 줄어 이익 급증…단말기값 자유화해야

"문제의 원인은 과잉 규제에 있었는데도 시장을
비난하며 규제에 규제를 더한 것이 단통법이다"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9개월을 분석한 언론의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 규제당국이 최근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규제당국의 해명은 시대착오적인 규제 권한을 지키려는 몸부림이거나 정책 실패의 책임을 모면해 보려는 억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우선 규제당국은 해명자료에서 단통법이 ‘비정상적인 시장을 정상화하는 규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비정상적인 상황이 초래된 것은 세계 각국에서 허용하는 단말기 지원금을 불법화했기 때문이다. 규제당국의 감시를 피해 할인을 기습적으로 단행하다 보니 새벽에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가격의 투명성이 사라진 것이다.

문제의 원인은 과잉 규제에 있었는데도 시장을 비난하며 규제에 규제를 더한 것이 단통법이다. 최근 들어서는 휴일에 이동통신사의 단말기 판매를 금지하는 등 법률적 근거가 희박한 시장 개입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규제당국은 단통법 이후 나타난 현상은 시장 정상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품 가격과 마케팅에 관한 의사결정을 규제당국이 하고 고정가격제와 비슷한 공시의무화를 규정한 것이 단통법인데, 이런 규제는 옛 소련 체제에서나 정상이라고 했을 법하다. 단통법은 기업의 판촉 활동과 가격 결정만 제약할 뿐 어디에서도 시장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편하는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규제당국의 입장은 한국 소비자의 통신비 지출이 매우 많아서 소비자 후생이 열악했다는 것이다. 소비자 후생은 상품의 효용(가치)에서 비용을 차감한 것임에도 지출만 보고 후생이 매우 열악하다고 하는 것은 경제학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개념이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별로 소비하지 않는 김치, 삼겹살, 소주에 대한 과잉 지출로 소비자 후생이 최악이고, 북한에 비해 대부분 물가가 높으니 남한의 소비자들은 북한 주민들보다 후생이 훨씬 열악하다고 해야 한다.

단통법이 국민 후생에 도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예외적인 규제라는 비판에는 ‘핀란드도 아직 2세대(2G)통신 서비스에 대해 지원금을 규제한다’고 항변한다. 2G 통신기술을 도입한 것은 무선통신의 선사시대에 해당하는 1992년이다. 정말로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 선진국 핀란드에서 지금 2G폰 고객을 유치하려고 보조금 경쟁을 하고 있다고 믿는지 궁금하다.

벨기에와 핀란드가 잠시 시행한 2G 단말기 보조금 규제의 악영향은 여러 학술 논문과 미국 통신위원회(FCC) 청문자료에서도 공개된 바 있다. 2G 서비스 규제가 폐지되지 않은 것은 규제 자체가 시장에서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3G, 4G로 시장의 경쟁이 이동하면서 단말기가 고가화가 이뤄짐으로써 단말기 지원금이 절실해져 규제가 철폐된 것이다. 그로 인한 신속한 신기술 보급이라는 긍정적 효과가 널리 알려졌음에도 이런 사문화된 규제까지 찾아서 궁색하게 제시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단통법이 국민의 후생에 도움이 됐다는 주장도 왜곡이거나 과장이다. 규제당국의 주장대로 이 규제의 목적이 통신비 절감이라면 기기값과 총 통신비 절감액을 제시해야 하지만 최초 가입시 요금제 평균이 낮아졌다는 자료만 제시할 뿐이다. 싼 요금제로 가입해도 사용량이 요금제 한도를 초과하면 훨씬 많은 사용료를 내야 하므로 계약시 요금제와 실제 내는 통신요금은 일치하지 않는다.
정부의 아전인수式 자료 발표

단통법 이전과 이후 평균 단말기 지원금은 몇십만원 이상 줄었다. 단통법 이전에는 중도 해약시 위약금을 판매점들이 대납해 실질적인 소비자 혜택은 공식 지원금 통계보다 컸다. 반면 통신비는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를 단순 비교하면 고작 약 1%, 연간 5000원 감소했을 뿐이다. 통신사들의 공시자료를 근거로 단통법 시행 이전인 지난해와 올 1분기 단말기당 평균 통신비를 비교해 보면 줄기는커녕 평균 0.6%, 가구당 연간 약 8600원 늘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가계 통신비 총지출을 줄이고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여당은 통신비 절감의 치적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설혹 통신요금이 조금 줄었다고 해도 이는 데이터 중심 요금제를 도입한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며, 단통법과 관련이 별로 없다.

단통법의 산업적 피해로 거론되는 애플의 시장점유율 급증에 대해서도 정부는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규제당국의 애플 홍보성 발표 자료에 따르더라도 애플의 신제품 출시 후 판매 비중은 미국과 일본에서 13% 정도 증가한 반면 한국에서는 25~30% 급등, 애플이 가장 성공한 다른 나라보다도 월등히 큰 폭으로 증가했다.

단말기 품질 우위는 신제품 출시 시점에 따라 출렁일 수밖에 없고 기업은 필요에 따라 가격과 서비스 등 품질 이외의 수단을 동원해 경쟁한다. 그런데 한국 기업은 단기 가격 대응력을 박탈당한 탓에 시장을 크게 빼앗기고 있는데도 이는 단통법 때문이 아니라 애플의 품질이 좋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정부는 하고 있다.

통신사의 올 1분기 마케팅 비용은 전년 대비 15% 줄었고, 영업이익은 75%, 당기순이익은 217% 늘었다. 규제당국은 지난해가 보조금 대란이 있던 과열된 시기여서 비교가 부적절하다고 주장하지만 보조금 대란이란 바로 규제의 효과가 부분적으로 무력화된 시기이기 때문에 규제의 영향을 비교하려면 당연히 그런 시기와 비교하는 것이 타당하다.

규제권력 놓지 않으려는 당국

관료주의의 속성과 폐단을 지적한 ‘파킨슨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이 법칙에 따르면 관료들은 나라에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과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필요 없는 일도 만든다고 한다. 한 예로 영국 해군성에서 관리하는 함정이 514척에서 114척으로 78% 줄어든 사이 군무원 수는 8배 늘었고, 인도가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뒤에도 영국의 인도청 직원 수는 수년간 계속 증가했다고 한다. 영국에서 100여년 전에 만연했던 비대한 관료주의와 비슷하게 규제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한국의 통신규제당국을 우리는 보고 있다. 이런 규제권력에 도취된 관료주의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한국 정보통신산업의 미래가 없을 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도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이사 >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