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스타트업 열풍…다양한 인재·성공 방정식이 '승부처'
스타트업의 성지(聖地)로 꼽히는 미국 실리콘밸리를 마다하고 한국으로 눈을 돌린 세계 청년들이 있다.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한국 스타트업에 승부를 걸기 위해서다. 독일에서 온 경영자부터 러시아 국적 개발자까지 각국 인재들은 한국 스타트업의 현주소를 어떻게 볼까. [한경닷컴]이 세계 청년들과 비정상회담을 열고 'K-스타트업'을 안건으로 상정했다. [편집자주]

[ 최유리 기자 ] "한국에서 스타트업 붐이 일고 있습니다. 1990년대 말 거품으로 꺼졌던 벤처 붐과는 확실히 달라요."

'K-스타트업 비정상회담'에 참여한 세계 청년들은 하나같이 '변화'를 화두로 꺼냈다. 최근 들어 스타트업을 위한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정부, 엔젤투자자, 엑셀러레이터, 경험을 쌓은 스타트업들이 멘토링, 네트워크 등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어서다. 과거 돈을 벌기 위해 모여든 '묻지마 투자자'들이 벤처를 지원했던 것에서 달라진 점이다.

달리 얘기하면 한국은 벤처 씨앗이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는 볕과 양분, 지지대 등을 고루 갖추기 시작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독일 베를린 등 세계 스타트업의 중심지를 경험한 인재들이 한국을 '넥스트 허브'로 지목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막 피어오른 불꽃이 거대한 스타트업 용광로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디캠프에서 마지막 비정상회담을 열고 K-스타트업의 과제를 짚어봤다.

◆ K-스타트업, 다국적 DNA로 시너지…"고용 문턱 더 낮춰야"

파란 눈에 노란 머리. 중국계 미국인. 캐나다 이민 2세대. 한국 스타트업 곳곳에는 이미 다국적 DNA가 흐르고 있다. 한국인의 강점으로 꼽히는 기술력이 다양성을 만나 시너지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한국을 기점으로 해외를 공략하는 스타트업에서 이들의 역할을 막대하다.

사이먼 챈 잡시커 공동대표: 한국인들은 엔지니어링 기술이나 논리력 측면에서 강점을 보입니다. 반면 틀에 갇혀서 생각하는 측면이 있죠. 때문에 이들이 창의적인 디자이너나 개방적인 마케터를 만나 역량을 펼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그러나 스타트업의 문이 글로벌 인재들에게 활짝 열려있는 것은 아니다. 채용 조건이나 비자 문제가 이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어서다.

챈 공동대표: 한국에서 외국인 직원을 고용할 수 있는 비율은 20%로 제한됩니다. 한국인 5명당 외국인 1명을 고용할 있다는 얘기죠. 그러나 소규모로 시작하는 스타트업에는 맞지 않는 기준이예요. 인력의 다양성과 팀 시너지 자체가 스타트업에겐 가장 중요한 재산인데 말이죠.
모데스타 위플래닛 사용자경험(UX) 디자이너: 비자 문제도 시급히 해결돼야 합니다. 일례로 회사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엄청나게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요. 회사 규모가 작고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죠. 정부가 관련 시스템을 좀 더 쉽고 유연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요.

◆ 스타트업 붐 지속되려면…"성장 궤적 다양해져야"

스타트업의 궤적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실패나 성장의 부침 등 스펙트럼이 넓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몇몇 성공 사례를 좇아 스타트업 붐을 일으킨다면 또 다른 거품이 될 수 있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카를로 제이콥스 아포라벤처스 매니징 파트너: 모두들 미국 실리콘밸리를 성공의 아이콘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는 스타트업은 6개 중 1개 꼴이예요. 중요한 것은 성공 확률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죠. 그런데 한국은 성공담에만 익숙해져 있습니다. 실패를 부끄러워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지 않죠.

챈 공동대표: 성공의 기준도 다양해져야 해요. 한국 투자자들은 주로 어떻게 수익을 낼 것인지 비즈니스 모델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초기 스타트업에게 잠재력이 아닌 구체적인 그림을 원하죠. 그러나 엄청난 성공을 거둔 스냅챗이나 인스타그램이 시작부터 수익구조를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성공에 대한 제한적인 시각은 스타트업에겐 장애물이 될 수 있어요.

알리나 그라츠너 아포라벤처스 매니징 파트너: 서울대를 나와 삼성에 취직해야 성공이라는 방정식부터 달라져야 해요. 정부나 투자자의 지원으로 바뀌는 것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행히 스타트업을 경험하거나 글로벌 감각을 키운 세대들이 나오면서 문화적으로도 변하기 시작했어요. 속도는 느리지만 변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최유리 한경닷컴 기자 now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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