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째 시집 '마흔두 개의…' 출간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서의 감각을 지닌 마종기 시인(76·사진)이 5년 만에 열한 번째 시집 마흔두 개의 초록(문학과지성사)을 들고 독자들을 찾았다. 연세대 의대, 서울대 대학원을 마치고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매년 이맘때면 고국으로 건너와 두어 달을 머무른다. 이번 귀국은 그에게 더욱 뜻깊다. 아동문학가였던 아버지 고 마해송 선생(1905~1966)의 전집이 총 10권으로 완간됐기 때문이다.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마 시인은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편도 비행기 표만 들고 미국으로 건너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에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며 울먹였다.

표제작을 비롯해 그의 시집에는 ‘마흔 둘’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여러 모양의 초록이 막 신나는 늦봄에 마흔두 개가 툭 튀어나왔다”며 “42는 메이저리그 흑인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로, 미국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숫자”라고 설명했다. 마이애미에서 헤밍웨이가 살았던 키웨스트까지 연결된 다리의 개수도 42개다.

시력(詩歷) 50년을 훌쩍 넘긴 마 시인은 “나이를 먹으면 시를 천천히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전 작품에 비해 시가 조금 길어진 것은 시인으로서의 역량이 떨어져 가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겸손히 말했다. 그러나 그가 묘사하는 삶의 풍경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건강한 시적 긴장감을 준다.

이번에 완간된 마해송 전집에 그는 큰 애정을 보였다. 마 시인은 “동화뿐만 아니라 수필을 포함한 전집을 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씻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전에 출간된 1~7권은 동화집이고 8~10권인 편편상 전진과 인생 아름다운 새벽에는 수필이 실렸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혼란스러운 시대였는데도 어린이와 아동 인권,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그의 지성적 면모가 상세히 드러나 있다.

마 시인은 “아버지 덕분에 피란지에서도 책을 많이 읽었다. 책장에 책이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화려한 생활이라 할 정도로 가난한 시대였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그의 눈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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