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황영조의 마라톤 우승으로 유명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언덕. 몬(산)과 주익(유대인)을 합쳤으니 곧 ‘유대인의 산’이다. 수많은 유대인이 이곳에서 처형돼 산처럼 거대한 무덤을 이뤘다.

1492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를 거부하는 유대인은 스페인에서 추방한다는 ‘알람브라 칙령’이 발표되자 상황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당시 스페인 인구 700만 중 유대인은 수십만에 불과했지만, 도시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칙령 이후 이들이 대거 추방되자 바르셀로나의 시영은행 대부분이 파산하고 말았다. 상인과 은행가 등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이나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이 거의 다 유대인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제 전체가 휘청대는 바람에 왕실 재정이 파탄 지경에 빠졌다. 그렇잖아도 유대인은 스페인 사회를 지탱하는 고급 두뇌였다. 이들은 상업과 의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의사와 세관원의 대부분이 유대인이었다. 왕과 귀족의 재정관리도 이들이 맡았다. 그 결과 ‘유대인=돈’의 이미지가 굳어졌다. 이는 반유대주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강제로 추방된 유대인들은 곳곳으로 흩어졌다. 이들이 바로 ‘세파르디 유대인’이다. 스페인에 살던 유대인을 통칭하는 용어다. 이들 중 많은 사람이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종교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와 해상무역을 통한 자유경쟁체제를 기반으로 한 상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 덕분에 네덜란드는 부강해졌다. 광대한 해상무역망을 구축해 세계무역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동인도회사와 서인도회사가 만들어졌고 유럽 최초의 중앙은행도 문을 열었다. 1610년에는 증권거래소가 생겼다. 우리보다 300여년이나 앞선 것이다. 이곳에서 동인도회사 주식이 거래됐고, 미래 시점에 확정된 가격에 상품을 인도하기로 하는 선물거래가 이뤄졌다. 첨단 금융기법이 그 때 다 생긴 셈이다.

이후 자본주의 최초이자 최악의 투기사건인 튤립투기로 고통도 당했지만 그만큼 돈이 몰리는 곳이 네덜란드였다. 네덜란드 유대인들은 나치 시절에 또 한 번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도 그런 비극의 하나다.

엊그제 스페인 하원이 500여년 전 추방된 유대인의 후손에게 시민권을 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전문가들은 유대인의 지갑을 노린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 옛날 유대인을 받아들인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기 위해 스페인은 가난을 택했다”고 한 말이 떠오른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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