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에 기준이 제시돼 있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새해 업무보고 기자회견에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과 관련한 ‘규제 기요틴’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답했다. 의사협회가 극렬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정작 복지부는 과거 판례를 따를 뿐, 법 개정 등 적극적 대책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이럴 바엔 복지부가 처음부터 입장을 명확히 할 것이지 왜 굳이 규제 기요틴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나선 건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복지부가 판례를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은 현재 논란의 대상인 한의사의 엑스레이나 초음파 사용 등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아예 선을 그은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 대법원과 헌법재판소가 한의사의 두 기기 사용은 허용하기 어렵거나 면허 외 의료행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한의사의 의료기기 허용은 과거 헌재가 사용 가능하다고 봤던 안압, 청력 등 일부 자동화된 기기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말이 규제 기요틴이지 사실상 달라진 게 거의 없는 셈이다. 의료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데 이해당사자 간 갈등이 무섭다고 정부 정책이 천년만년 법원의 과거 판례만 따르겠다는 식이면 복지부는 뭐하러 있는 건지 모르겠다.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일부 국립대 총장 후보자의 임용 제청 거부와 관련한 소송건에 대해 “대법원이 결론을 내리고 판례를 확정지으면 교육부는 따르겠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황 부총리는 제청거부 사유 공개와 관련해서도 “대법원 판례가 공개하라고 하면 공개하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총장 임명문제 하나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법원에다 판단을 맡기는 교육부가 어떻게 대학개혁을 하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문제는 이런 부처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노동분야만 해도 그렇다. 시대상황이 크게 바뀌었는데도 후진적 노동법규를 그대로 방치한 결과, 노동현장은 법원 판결에 따라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말았다. 파견근로, 통상임금 문제 등이 그렇다. 모든 결정을 법원에 의지하겠다는 장관은 사실상 정책의지가 없다는 것인 만큼 그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