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

황영기 금투협회장·하영구 은행연합회장
박진회 씨티은행장·윤상직 산업부 장관…

전공 외골수 드물고 활동·관심분야 넓어
금융·산업·정치 등 다양한 영역 진출

황영기 전 KB금융그룹 회장이 차기 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됐다. 지난달에는 하영구 전 한국씨티은행장이 전국은행연합회장에 취임했다. 두 사람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황 당선자는 71학번, 하 회장은 72학번이다. 다음달 퇴임하는 박종수 현 금투협회장(66학번)과 한국씨티은행을 이끌고 있는 박진회 행장(76학번)도 동문이다.

◆경제학과에 치인 ‘작은 좌절’이 이끈 삶

금융권뿐 아니라 산업 관료 정치 부문에서도 서울대 무역학과 출신들은 눈에 띈다. 재계에는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부회장(71학번), 금춘수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사장(72학번) 등이 있다. 관가엔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75학번)이 활동하고 있다. 홍석우 전 지식경제부 장관(74학번) 도 무역학과 출신이다. 금융위원회 출신인 유재훈 예탁결제원 사장(79학번)도 서울대 무역학과에서 공부했다. 국회엔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77학번)과 정두언(76학번), 김세연(91학번) 새누리당 의원이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대학 시절 맛본 ‘작은 좌절’이 살아가는 데 많은 힘을 줬다고 입을 모은다. 작은 좌절은 다름아니라 경제학과에 밀린 경험이다. 서울대는 경제학과와 무역학과(1985년부터 국제경제학과로 개명)를 같은 계열로 뽑았다. 1학년 성적을 바탕으로 2학년 때부터 경제학과와 무역학과를 선택하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성적이 좋은 학생은 경제학과를, 그렇지 못한 학생은 무역학과를 갔다. 이 과정에서 무역학과 학생들은 경제학과 학생들에게 밀린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다.

홍석우 전 장관은 이런 좌절이 오히려 생존력을 길러줬다고 회고했다. 그는 “서울대에 들어올 만큼 수재들이었지만 대학 때 성적으로 열등생이 되는 좌절을 처음으로 맛봤다”며 “그때부터 ‘정신 안 차리면 큰일 나겠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 퍼졌다”고 말했다.

◆‘서울대 안의 개성파’ 단결력은 최고

서울대 무역학과 출신 중 상당수는 자신들을 “서울대 안의 이단아였다”고 회고했다.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다들 개성이 강했고 학생운동도 다른 과보다 열심히 했기에 성적이 잘 나올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성적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반면 운동권 활동이나 동아리 참여 등이 활발하다보니 이들을 부르는 별명도 다양했다. 이 전 장관은 “무역학과 교수들 조차도 ‘너희(무역학과 학생)들은 2류지만, 우리는 1류’라고 놀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고 회고했다. 다른 서울대 무역학과 출신은 “학생운동, 당구, 막걸리 마시기엔 열심인데 공부는 못한다고 ‘인민무력과’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돌아봤다.

관심 분야가 다양하다보니 졸업생들이 진출한 영역도 금융, 산업, 행정부, 정치 등 경계가 없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들이 교수 혹은 관료, 한국은행 등으로 몰린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유재훈 사장은 “무역학과의 영어 이름은 ‘국제경제학(International Economics)과’였다”며 “학생들의 시야가 넓었고 뭔가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경영학과나 경제학과에 비해 학문 영역이 불투명했던 점도 학생들이 스스로 앞날을 더 적극적으로 고민하게 한 계기였다. 하영구 회장은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기보다 스스로 발굴한 분야에 진출하다보니 몸담고 있는 분야가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제도권에 맞춰 살기보다 스스로 고민하고 삶의 영역을 개척하는 ‘창의형 인재’가 많다는 뜻이다.

자기 주장이 강한 개성파들이지만 의리는 강하다는 게 서울대 무역학과 출신들의 얘기다. 홍석우 전 장관은 “무역학과와 경제학과는 인원수로 3 대 7 정도로 무역학과 출신이 훨씬 적다”며 “하지만 동창회를 하면 참석자 수가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박신영/장규호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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