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米壽·88세>

한국 대표 장수기업

소유와 경영이 분리
공익법인이 대주주로…창업자 경영에 간섭안해

모범적인 노사관계
창사 이래 분규 한 차례도 없어…대등한 노사관계 유지

유일한 박사가 창업한 유한양행(대표 김윤섭)은 올해로 미수(米壽·88)를 맞은 국내 대표 장수기업이다.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유일한 박사는 잠시 귀국했을 때 눈앞에 펼쳐진 식민지 고국의 처참한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유 박사가 영구 귀국을 결심하자 당시 미국에서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서재필 박사는 작은 선물을 건넸다. 서 박사의 딸이 직접 만든 ‘버들표 목각품’이었다. “버드나무처럼 민족이 편히 쉴 수 있는 큰 그늘이 돼달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유한양행의 상징 ‘버들표’의 유래다. 고국으로 돌아온 유 박사는 연희전문학교 교수 초빙을 마다하고 1926년 12월 종로2가의 덕원빌딩에 제약사인 유한양행을 창립했다. 회사명은 유 박사의 성인 ‘유(柳)’와 한국의 백성이라는 뜻의 ‘한(韓)’에서 따왔다.

‘제약업계 최초’의 역사 쓴 유한양행

유한양행은 일제시대 결핵치료제, 항생제 등 필수 의약품을 출시하며 ‘최초의 서구적 제약기업’으로 발돋움했다. 80년 이상 사랑을 받아온 안티푸라민을 비롯해 50년 동안 국민영양제로 인기를 누려온 삐콤씨 등이 간판 제품이다. 유한양행은 1960~1970년대 고속 성장기를 거치면서 장수 기업의 기틀을 마련했다. 특히 1971년 유 박사가 타계하면서 소유주식을 공익법인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업으로 재조명됐다.

유 박사는 “기업 모든 구성원은 하나의 공동운명체”라는 신념으로 1936년 유한양행을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회사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기업을 창업주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절 실질적인 ‘종업원 지주제’를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유한양행은 1998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쳐 국내 상장기업 및 제약업계 최초로 임원뿐만이 아닌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스톡옵션제도를 도입했다.

1935년 경기 소사(현 부천시)에 근대적 제약공장을 설립했으며 1985년 국내 최초의 KGMP(한국우수의약품 제조기준) 적격업체 지정, 1988년 업계 최초의 중앙연구소 KGLP 적격 시험기관 지정 등 끊임없이 생산 및 연구시설을 첨단화해왔다. 현 오창공장도 미국 심사기준인 CGMP 수준의 설비와 업계 최정상급의 제조능력을 갖추고 있다.

투명경영이 가능한 지배구조

유한양행은 공익법인이 대주주인 독특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대주주인 유한재단(공익사업) 및 유한학원(교육사업) 등 비영리단체가 지분 50%를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기관투자가(41%)와 개인(9%)이 보유하고 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만큼 유한양행에는 일찌감치 전문경영인 체제가 안착됐다.

유 박사는 1969년 10월30일 주주총회에서 당시 조권순 전무에게 공식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했다. 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경영에는 정실이 개입돼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서였다. 이 원칙은 지금도 유한양행 직원 가운데 유 박사의 친인척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현 김윤섭 사장을 비롯해 유한양행의 전·현직 최고경영자들은 모두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른 것도 독특한 회사 문화다.

신입사원들이 목표가 ‘최고경영자’라고 당당히 밝히는 것도 이런 문화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무분규, 모범적인 노사관계

유한양행은 내부적으로 사장도 월급을 받는 근로자라는 의미로 ‘노사’가 아닌 ‘노노(勞勞)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노사분규가 창사 이후 한 차례도 없었다.

이 같은 상호 신뢰는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실제로 2006년 충북 오창에 국제적 품질 기준에 부합하는 신공장을 준공했을 때 기존 경기 군포공장에 있던 직원 대부분이 군말없이 이전에 동의했다고 한다. 유한양행 노조 관계자는 “근로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회사가 잘되는 것이 결국 사원들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경영진은 애초 설계에 없었던 후생동을 새로 짓고 통근버스 및 현지 숙소는 물론 동호회 활동을 지원하며 이전 동의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 사장은 “노사관계는 어느 한쪽이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닌 대등한 관계이며, 팽팽한 머리싸움이 아닌 가슴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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