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

미 MIT(매사추세츠공대)에서 발행하는 기술 잡지 테크놀로지 리뷰(Technology Review)에서 매년 선정하는 ‘TR 35’(35세 이하의 젊은 혁신가 35명)는 그야말로 당대 이공계 천재들의 집합소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야후의 제리 양 등 최고경영자(CEO)들 모두 TR 출신이다. 한국인으로는 그동안 2명의 교수와 한 명의 재미동포 사업가가 선정됐을 뿐이다.

올해 선정된 TR에는 놀랍게도 27세의 이진하 삼성전자 책임연구원이 포함돼 있다. 그는 3차원 공간에서 가상현실과 실제 물질세계를 넘나들 수 있는 디지털 그래픽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삼성전자 사내보에 게재된 이 연구원의 인터뷰가 눈길을 끈다. “아이디어의 원천은 신화(神話) 읽기며 신화 속 세상을 탐구하다 보면 미래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가 요지다.

“아이디어 원천이며 미래 실마리”

그의 세계관이 궁금해 추가 취재했다. 이 연구원은 신화에 나타나는 신과 인물들의 메타포와 상징의 매력에 이끌려 신화를 연구한다고 했다. 신화를 이루는 요소들을 재해석하며 관련 이미지를 떠올리면 우리의 삶과 직결돼 있으며 기술자들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해답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와 한국 신화가 매력이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 연구원 말고도 신화를 좋아하는 이공계 천재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뛰어난 프로그래머인 저커버그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탐독하는 광팬이다. 그는 신화를 읽으면서 인간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며 이런 관심이 기술을 완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보고 있다.
과학자들 역시 대부분 신화를 사랑했다. 아이작 뉴턴은 신화가 확인 가능한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그것의 실체를 찾아내는 데 몰두하기까지 했다. 신화와 과학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학자도 많다. 신화학자 비엘라인은 “신화는 지구상에서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설명하려는 최초의 시도며 과학의 선조”라고 표현할 정도다. 우주나 인간 자연의 비밀을 보여주는 인류의 최고 유산이라는 것이다.

과학교과서도 스토리 중시해야

한 설문조사에서 이공계 교수들이 다독하는 책으로 ‘삼국지’와 ‘그리스 로마 신화’가 꼽힌 것도 그렇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이들이 신화나 삼국지에서 얻으려고 한 것은 세상을 혁신할 수 있는 기술의 모티브나 이미지였을 것이다. 신화의 힘은 무엇보다 꿈과 희망이며 아이디어다. 어떻게 보면 고전 전체가 이 같은 힘을 키우는 엔진이 될 수 있다.

2018년 고교 신입생부터 모든 학생이 사회와 과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한다. 소위 문과 이과를 통합 개편한 정책이다. 지금은 인문계에선 사회과목 2개, 과학계에선 과학과목 2개를 선택해 수능을 치른다. 이제 교과서를 어떻게 만드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한다.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등을 따로 나눌 것인지 한 권으로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다.

하지만 이제 이들 과목을 따로 나눠 배우던 시대는 지났다. 과학기술의 트렌드도 융합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차라리 신화의 얘기들을 과학교과서에 같이 녹이는 건 어떨까. 가뜩이나 독서가 부족한 이공계생에게 책읽기를 유인할 수 있지 않을까.

오춘호 논설위원·공학博 ohc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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