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멸망시킬 뻔한 전투로봇 중 한 대가 전열을 이탈한 뒤 사라졌다. 미래 세계의 지표면연합 사령부 특별수사관인 민소는 도망친 로봇 ‘가마틀’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로봇은 스페인 마드리드를 폐허로 만들 때 위력을 발휘한 레이저포를 장착했다. 도망치는 로봇에게 납치된 뒤 알 수 없는 실험을 당한 피해자들은 모두 여성. 하지만 사망자는 없다.

순문학과 공상과학(SF)을 넘나드는 문체로 주목받는 작가 배명훈 씨(사진)가 신작《가마틀 스타일》(은행나무 펴냄)에 사용한 소재는 로봇. 로봇이란 소재는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장치지만 배씨는 단순한 로봇 이야기가 아니라 로봇의 인간성, 로봇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을 그렸다. 배씨는 작가의 말에서 “로봇 가마틀의 이야기를 성장소설로 부르고 싶지는 않다”며 “성장해야 할 것은 자아가 아니라 세계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와 함께 예상치 못한 반전이 슬며시 웃음 짓게 하는 작품이다.

《가마틀 스타일》은 은행나무가 기획한 중편 시리즈인 ‘은행나무 노벨라’ 시리즈의 첫 작품이다. 일명 ‘테이크 아웃 소설’로 8000원이라는 책값과 원고지 400~500장 분량은 커피를 사서 마시는 짧은 순간에 읽기 좋다. 은행나무는 단편과 장편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 작가 13명의 작품을 매달 한 권씩 내놓을 계획이다.

중편 소설은 단편보다 진전된 주제의식, 장편보다 빠른 호흡이란 장점으로 1970~1990년대 인기를 끌었지만 최근엔 단편 소설집이나 장편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진희 은행나무 주간은 “한국 소설사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중편소설의 의미와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시리즈를 기획했다”며 “오늘날 독자들에게 단편의 짜릿함과 장편의 여운을 갖춘 새로운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설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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