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금융 사태와 모럴 해저드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의 갈등이 불거진 가운데 금융당국이 연내 금융지주 회장의 ‘황제 경영’을 금지하기로 했다. 국민은행처럼 금융지주의 완전 자회사이면 소속 사외이사를 없애는 한편, 금융지주 회장의 책임을 명문화해 문제 발생시 확실히 문책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런 내용의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달 발표한다. - 5월22일 연합뉴스

KB금융 사태의 원인

최근 잇달아 금융 사고가 터진 KB금융그룹에 이번엔 경영진끼리의 이전투구라는 볼썽사나운 일까지 벌어졌다. 국민은행의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지주회사인 KB금융지주(KB금융)와 산하 금융사인 국민은행 경영진 간에 시정잡배 같은 싸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산규모 기준으로 우리나라 3대 금융사의 하나인 KB금융그룹의 최고 경영자들이 회사 명운을 가를 만한 경영 안건을 놓고 의견이 충돌한 것도 아니고 전산시스템에 사용하는 기기를 어느 회사 제품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법정 소송까지 벌이겠다는 판국이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민간 기업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금융지주사와 은행 경영진 간 갈등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왜 유독 은행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 그 답은 은행에 주인이 없기 때문이다. 주인이 없으니 정치권이나 정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지주회사 회장이나 은행장이 된 사람들이 자기가 더 잘 났다고 싸우는 꼴이다.

국민은행의 이번 내분은 국민은행의 주 전산시스템 교체가 배경이다. 국민은행은 그동안 IBM의 메인프레임 시스템을 써왔다. 그런데 시스템의 개방성이 떨어지고 시스템 간 연계가 어렵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유지·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KB금융지주는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은행 경영협의회, 올해 4월 국민은행 이사회 결의를 거쳐 유닉스시스템으로의 변경을 결정했다. 유닉스가 연계성과 개방성이 뛰어나고 유지 보수 비용도 적게 든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이건호 행장과 정병기 상임감사위원이 반발하고 나섰다. 기술검증 과정에서 시스템상 문제가 발견된 데다 사전 사업자 선정설도 돌았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두 사람은 사외이사들이 주축이 된 이사회에서 재논의 의견을 받아들이 않자 금융감독원(금감원)에 감사를 요청했다. 또 법원에 이사회 결정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가처분신청도 낼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도 경영진 간 반목 잦아

국민은행 전산교체 파문은 속으로 곪아온 임영록 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은행장 간 권력 다툼이 원인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주회사 회장과 은행장 간 반목의 사례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2001년 우리금융지주가 국내 첫 금융지주사로 만들어진 뒤 너도나도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지만 회장과 은행장의 대립이 반복됐다. 금융지주사의 기반이 은행에 치우친 지주사 구조는 왜곡된 지배구조를 낳았으며 이런 구조에서 잉태된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다툼은 대부분 파국을 맞았다.

우리금융은 지난 13년 동안 회장과 행장의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윤병철 회장과 이덕훈 행장 시절 우리금융은 최근 국민은행처럼 차세대 전산시스템 도입을 놓고 싸웠다. 박병원 회장과 박해춘 행장 체제에선 갈등이 더 심해졌고, 이명박 정부 시절 이팔성 회장 때는 극에 달했다.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대립은 출신과 선임 배경, 정치권의 풍향계와도 관계가 깊다. 임영록 KB금융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사이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았던 이면에는 이들의 출신과 선임 배경이 있다. 임 회장은 행정고시 20회로 재정경제부 2차관을 지냈다. 이른바 ‘모피아(재무부 경제관료 출신) 금융인’이다. 반면 이 행장의 주요 경력은 금융연구원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금융권에서 회자되는 이른바 ‘연피아(금융연구원 출신) 금융인’이다. 이런 배경에 따라 일각에선 임 회장이 이 행장의 ‘상관’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 행장이 임 회장의 영향력 바깥에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2010년에 벌어진 ‘신한 사태’도 마찬가지다. 신한 사태는 라응찬 지주 회장을 따르는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차기 지주 회장으로 거론되는 신상훈 지주 사장을 배임 혐의로 고소한 게 시발점이었다. 이명박 정부와 가까운 라 회장이 호남 출신의 신 사장을 배격함으로써 장기 집권 체제를 공고히 하려다가 벌어진 일이라는 분석이다. ‘왕 회장’으로 불리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과 연임에 실패하고 물러난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의 관계도 비슷한 시각에서 보는 이가 적지 않다. 노조의 반발에 하나고등학교 출연을 거부한 윤 전 행장이 퇴진 후에도 하나금융 인사에 관여해온 김 전 회장으로부터 ‘미운털’이 박혀 물러나게 됐다는 것이다.
금융지주회사란?

금융지주회사란 주식(지분) 보유를 통해 은행이나 증권사, 보험사, 저축은행, 캐피털 등과 같은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소유하고 경영하는 회사를 말한다. 금융지주 회사의 형태는 지주회사가 금융 업무를 직접 하는지 여부에 따라 △금융 사업을 하지 않는 순수지주회사와 △사업을 하는 사업지주회사로 구분된다. 순수지주회사는 일종의 서류상 회사(페이퍼 컴퍼니, paper company)로 씨티그룹 등 미국의 금융지주회사들이 주로 순수지주회사로 운영된다. 우리나라도 순수지주회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유럽 은행들은 금융업무를 영위하면서 자회사를 거느리는 사업지주회사 방식을 취하고 있다.

금융지주회사 체제는 지주회사가 다양한 금융회사를 거느리게 돼 사업의 시너지를 높이고 보다 투명한 경영도 가능하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는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주요 은행들과 산하 금융사를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펴왔다.

2001년 우리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출범했으며 2003년까지 4개의 금융지주사가 생겼다. 이후 금융회사들이 너도나도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현재 13개까지 불어났다. 지주사 밑에 딸린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모두 합치면 300여개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문제점도 속속 노출되고 있다. 우리·KB·신한·하나 등 주요 금융지주의 작년 당기순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0~40%씩 쪼그라들었다. 지주사 내 카드·보험·증권 등 업종 간 시너지 효과도 크지 않다.

주인없는 은행이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낳아

전문가들은 지주사 회장이 은행장을 실질적으로 선임하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회장의 은행 등 자회사 장악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금융지주회사 체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를 비롯한 외부 출신이 주인없는 금융지주사와 은행의 회장과 은행장을 장악하면서 내부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분석한다.

역대 KB금융 회장 4명은 모두 외부 출신이다. 이들은 주인없는 KB금융의 회장이 되기 위해 ‘외부’의 힘을 빌렸다. 은행장도 마찬가지다. 형식적으론 지주사 회장이 은행장을 선임하지만 실제로는 은행장 자신이 얼마나 튼튼한 외부 연줄을 동원할 수 있는가가 은행장 선임의 결정적 요소라는 게 정설이다. 이러다 보니 은행장은 회장에게 ‘빚’이 없다. 오히려 자신을 은행장으로 밀어준 ‘외부’에 더 영향을 받는다. 회장과 은행장의 갈등이 터져나오는 주된 이유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자신을 뽑아준 사람이 회장이 아닌 정치인, 경제관료로 여기는 행장이 회장에게 충성하기가 쉽지 않다”며 “지주사 회장도 내부 출신이 아니라 낙하산으로 내려왔다면 더욱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회장과 은행장이 갈등 관계이면 임직원들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보신을 위해 줄서기에 급급하고, 결국은 다 망하는 길을 밟게 되는 것이다.

이런 도덕적 해이 현상을 해소하려면 우선 최고경영진 선임에서 외부가 손을 떼야 한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는 “회장이 은행장을 겸임하거나, 내부 출신이 회장이 되는 지주사에서는 갈등이 적었다”며 “정치권 등 외부에서 인사에 개입하는 걸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주회사와 자회사 경영진의 경영 권한과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종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지주사 이사회와 경영진에 실질적으로 자회사 경영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과 권한을 보장하는 대신 책임도 함께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도 과제다.

정상적인 은행이라면 전산시스템 교체에 대한 내부 이견을 사전 조정을 통해 해소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주인 없는 은행에서 대리인들이 정치권이나 정부 권력을 등에 업고 주인 행세를 하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극심하다. 가뜩이나 관치(官治)로 인해 한국의 금융산업이 망가지고 있는 판이다. 매번 이런 짜증나는 모습을 볼 바에야 차라리 주인을 확실하게 찾아주는 게 어떨까? 주인이 있어야 배가 산으로 가지 않는 법이다.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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