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돈 화백 화업 70년 회고전
광택이 없는 흙벽에 그려진 벽화와 같은 느낌이 향토적인 문학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고운 모래밭의 질감을 주는 황갈색의 화면 밑바탕에 차분한 정적 구도를 활용한 그림은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 꿔봤음 직한 아련한 꿈에 젖게 한다. 서도민요 몽금포타령으로 유명한 황해도 장연 태생으로 1949년 남하해 서울화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노화가 박돈 씨(본명 박창돈·87)의 회화 얘기다.

27일부터 내달 20일까지 서울 압구정동 청작화랑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여는 박 화백은 해주예술학교 미술과 출신이다. 70년 동안 동양의 정신성을 향토색 짙은 문학 작품처럼 화면에 담아왔다. 김환기, 권옥연, 김종하, 김흥수, 박영선 등과 함께 활동하면서 동서양의 미를 접목했던 박 화백은 여전히 아흔을 앞둔 나이에도 창작의 불씨를 태우는 원로 화가다.

그는 요즘도 서울 남현동 작업실에서 매일 5~8시간씩 작업에 몰두한다. 화실에서 아예 속옷까지 벗고 있을 정도로 열이 많아 사시사철 부채와 얼음물을 찾으면서도 창작의 끈을 놓지 않는다. 스스로 ‘센 성격’이라 말하는 그는 그림을 요구하는 세도가 앞에서 자신의 눈을 찔러 외눈박이가 된 조선조 화가 최북의 얘기를 소개하며 “예술가는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해 후배 작가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그는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내 작품 세계와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뿐일 것이고, 찾는 이가 없어 고독하다면 그 역시 숙명”이라며 대쪽 같은 자존심을 내비쳤다.

꼿꼿하고 까칠한 성격이지만 그림에서만은 동화적이고 따뜻한 한국적 정서가 담뿍 배어 있다. 그는 유화의 느낌이 들지 않고 매끄러운 흙벽과 같은 마티에르(질감)가 나도록 나름의 작업 방식을 구축했다. 비법은 여태껏 아들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는 항상 목가적이고 잔잔한 시골 풍경과 한복을 입은 단아한 소녀, 소의 등을 타고 피리 부는 소년, 도자기, 장산곶 마루에서 내려다보이는 몽금포해수욕장, 멀리 백령도의 산봉우리, 그리고 젊은 날 첫사랑의 소녀 등이 등장한다. (02)549-3112

김경갑 기자 kkk10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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