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중국 신장(新疆) 위구르자치주 박물관에는 3800여년 전 여인의 미라가 있다. ‘누란(樓蘭)의 미녀’로 불리는 이 미라는 금발에 오똑한 콧날, 커다란 눈, 흰 살결 등 유럽계의 특징을 갖고 있다. 건조한 기후 덕분에 보존상태가 좋아 손톱의 봉숭아꽃물까지 그대로 있다. 오묘한 미소로 ‘죽음의 모나리자’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여인이 살던 누란은 옛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왕국이었다. 일본 작가 이노우에는 그녀가 남편 피살 후 독초를 물고 자살한 마지막 누란 왕비라는 내용의 소설을 썼다. 미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지역에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았다. 위구르족은 몽골 고원과 중앙아시아를 누비던 투르크계 유목민을 통칭하는 말이지만 피부가 노랗거나 흰 사람도 많다.

이곳은 지중해와 페르시아, 인도, 러시아, 중국을 연결하는 통로였기에 유라시아 문화·교역의 용광로였다. 한반도의 7.5배, 중국 영토의 17%나 되고 8개국과 국경선을 맞댄 군사 요충지이기도 하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능가하는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지여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위구르의 역사는 파란만장하다. 기원전 59년 한나라에 점령된 후 엎치락뒤치락하다 8세기 위구르 제국으로 일어섰지만 13세기 칭기즈칸에 복속됐다. 1397년 독립한 뒤 1760년 청 건륭제에게 정복됐다가 1864년 잠시 반짝한 뒤 다시 먹혔다. 이 때 생긴 이름 ‘신장’은 ‘새로운 강역’이라는 뜻이다.

중세 이슬람 작가들은 이 지역을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땅’이라는 뜻의 투르키스탄으로 불렀다. 위구르인이 1933년과 1944년 독립을 선언하며 내세운 국호 또한 동투르키스탄 이슬람공화국과 동투르키스탄 인민공화국이었다. 1949년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완전히 제압된 뒤에도 자신들을 동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르며 끊임없이 분리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엊그제에도 12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이달 들어서만 네 번째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중국 공안 당국이 비상 사태에 돌입했다. 춘제(春節·설) 폭죽을 사는 사람에겐 실명을 요구하고 위구르 전역과 베이징의 ‘요주의 인물’에 대한 예비 검속도 강화하고 나섰다.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안타깝게도 ‘신장의 역사’를 쓴 제임스 A 밀워드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조차 위구르의 장래를 불투명하게 본다. 중국의 힘 때문이다. 위구르인은 고난도의 줄타기 곡예로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900여만명의 위구르인은 과연 역사적 곡예를 펼쳐 보일 것인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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