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직원이 개인정보 빼돌려…건당 최고 500원에 거래

입력 2014-01-08 20:59 수정 2014-01-09 02:25

지면 지면정보

2014-01-09A3면

카드사 개인정보 1억건 유출

내 신상정보 얼마에 팔리나
주민번호·집주소 포함 땐 가격 3배 뛰어
中 보이스피싱 조직도 정보 사들여 활용

“OOO 고객님, OO캐피탈입니다. 현재 높은 금리로 돈을 쓰고 계신데 저희가 더 낮은 금리로 1500만원까지 빌려 드릴게요.”

회사원 김정학 씨(41)는 얼마 전 이 같은 전화를 받고 “도대체 어떻게 내 전화번호를 알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상대방은 잠시 멈칫하더니 전화를 끊었다. 김씨는 “업무시간에도 수시로 이런 종류의 전화나 문자가 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험을 한 사람이 많다. 나도 모르게 개인정보가 그만큼 많이 떠돌아다니기 때문이다. 이 중 일부는 카드사 등 금융회사로부터 불법 유출된 개인정보라는 것이 금융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8일 적발된 1억400만명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은 이런 설명이 상당한 타당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출만기 정보가 가장 비싸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직원 A씨는 KB국민카드와 롯데카드 NH농협카드에서 1억400만명(중복 포함)의 개인정보를 빼냈다. 사상 최대 규모다. 그는 대출광고업자에게 1650만원을 받고 이 중 일부 정보를 팔았다. 대출광고업자는 다시 대출모집인에게 이 정보를 팔아 2300만원을 챙겼다.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된 것만 이렇다. 이번에 유출된 개인정보가 얼마나, 어디까지 빠져나갔는지는 아직 모른다.

불법으로 유출된 개인정보는 이런 식으로 시중에 유통된다. 몇 번의 판매 과정을 거치면서 일부는 중국 등 해외로 팔려나가기도 한다. 중국에 본부를 둔 국내 보이스피싱 조직들도 이런 정보를 활용한다. 관련자들은 주로 금융회사의 대출모집 수탁업체에 근무하면서 서로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정보가 만들어진 시기, 내용 등에 따라 건당 50원에서 500원 정도에 거래된다. 만들어진 시기가 최근일수록 ‘비싼 값’을 받는다. 휴대폰 번호, 직장 및 집 주소 등의 개인정보는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유출 시점부터 1년이 지날 때마다 정보 가격이 20% 안팎 떨어진다”고 말했다.

정보의 내용도 가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여러 경로로 개인정보가 유출되다보니 이름이나 휴대폰 번호 등은 10~20원의 싼값에 거래된다. 주민등록번호, 직장이나 집 주소 등의 정보가 포함되면 값이 2~3배 뛴다.

은행 대출 만기, 카드 결제 내역 등의 금융정보가 포함된 정보가 가장 비싸게 팔린다. 한 대부업체 관계자는 “대출 만기가 돌아오는 시점에 대출을 권유하면 성사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인정보 불법 유출 급증

개인정보의 건당 가격은 미미하다. 하지만 10만건이 넘으면 가격은 수천만원에 이른다. 개인정보가 곧 돈이다보니 개인정보 수집은 관련자들의 표적이 된다. 최근 정보 유출 사건이 은행 보험사 카드사 캐피털사를 넘나들면서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다.

2011년까지만 해도 외부 해킹에 의한 정보 유출이 많았다. 내부 전산망을 뚫고 들어와 개인정보를 빼가는 식이었다. 2011년 한화손보에서 15만건, 현대캐피탈에서 175만건의 정보가 외부 해킹을 통해 유출됐다.

외부 해킹을 막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보안시스템을 강화했지만 정보 유출 사고는 줄어들지 않았다. 정보를 직접 다루는 내부 직원이나 관련 업무를 위해 투입된 외주사 직원이 직접 정보를 훔쳐내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작년에 적발된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정보 유출(10만3000건)은 외주 직원이 주범이었다. 비슷한 시기 적발된 한국씨티은행의 3만4000여건 정보 유출 사건은 내부 직원이 주도했다. 모두 정보를 빼내 주면 돈을 주겠다는 유혹에 넘어간 결과다. 한 관계자는 “불법적으로 유출돼 유통되고 있는 개인정보가 점차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툭하면 대출 권유 전화나 문자를 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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