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오스트리아 예술기행 <2> 빈

빈이 좋은 이유는, 가을이 내린 이 도시가 좋은 이유는 걷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적절히 안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쾌청한 가을을 가르며 걷다 보면 위대한 화가 에곤 실레와 만난다. 그가 걸었던 아름다운 도시의 구석구석은 현재 젊은 예술가들이 발산하는 기운으로 가득하다. 다시 뚜벅뚜벅 길을 나선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역사적·예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수많은 건축물이 특유의 아우라를 발산한다. 위대한 건축가 오토 바그너와 훈데르트바서가 걷고 사색하며 영감을 얻었을 이 도시는 여행자에게 속삭인다. 예술은 삶을 아름답게 한다고.

○금강산도 식후경, 나슈마르크트
나슈마르크트는 ‘빈의 식탁’이라 불리는 활기찬 시장이다. 빈 분리파 전시관 대각선에 있는 이곳은 16세기부터 형성된 빈 최대의 재래시장. 500m 길이의 양 갈래 길을 따라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상점들이 내놓은 신선한 과일과 채소 육류 해산물 등은 보기만 해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치즈, 절임, 디저트, 빵, 와인 등을 전문적으로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고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아랍, 인도, 터키의 향신료 상점이 많아 이국적인 정취를 더한다.

해산물 패스트푸드점으로 유명한 노드시(독일어 발음 노트제, nordsee)를 비롯해 비에니즈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캐주얼 다이닝 레스토랑 테바672(tewa672.com)와 김소희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킴 코흐트’의 분점도 나슈마켓 안에 있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벼룩시장에서는 누군가의 손때와 정이 밴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들을 좋은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빈에서 가장 활기차고 왁자지껄한 나슈마켓의 끝에는 또 하나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위대한 건축가의 이름, 오토 바그너

활기찬 삶의 현장, 나슈마르크트를 구석구석 구경하다 보면 어느덧 시장의 끝자락이다. 거기에 유겐트스틸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 두 채가 나란히 서 있다. 근대 건축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오토 바그너의 마욜리카 하우스와 그 옆의 메다용 하우스다. 1899년 건립된 마욜리카 하우스는 이탈리아의 마욜리카 타일로 외벽을 장식한 건축물로 오토 바그너의 대표작 중 하나다.

타일에 새겨진 붉은 장미넝쿨은 마치 실제가 건물 전체를 뒤덮은 듯 생동감 있다. 당시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축에 익숙했던 일부 사람들은 파격적이고 신선한 바그너의 세기말 작품을 두고 “말할 수 없이 끔찍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지금은 빈이 자랑하는 건축유산이자 유겐트 스틸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빈 시민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건물 내부는 주거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어 관람은 불가능하다. 마욜리카 하우스와 묘한 조화를 이루는 메다용 하우스 역시 오토 바그너가 같은 해에 지은 건물이다.

건물 외벽을 타고 오르는 야자수 문양의 세밀한 금세공 장식이 아름답다. 나슈마르크트의 서쪽에 마욜리카 하우스와 메다용 하우스가 있다면 카를스플라츠 역사는 시장 입구를 시작점으로 카를스플라츠거리를 따라 동쪽으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카를스플라츠 역사 역시 오토 바그너의 작품으로 유겐트 스틸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예술과 함께 노는 거대한 놀이터, MQ

뮤제엄 콰르티어(MUSEUMS QUARTIER)라고 쓰고 ‘엠큐’라고 읽는다. 카를스플라츠역사에서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에 맞춰 10분을 걸으면 도착하는 이곳은 자유롭고 청량한 공기로 가득하다. 시간이 멈췄으면 싶을 만큼 볼 거리가 가득해 발걸음은 빨라지고, 호흡은 가빠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현지인처럼 시간을 두고 천천히 둘러보기로 다짐했다. MQ는 오늘 다 못 봐서 내일 다시 온다 해도 더없이 좋을 곳이니까.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구간 터를 개조해 만든 이 거대한 박물관 지구에는 넓게 펼쳐진 광장을 중심으로 현대미술관(MUMOK), 쿤스트할레 빈(Kunsthalle Wien), 어린이 미술관 ‘줌’, 댄스 지구(Tanzquartie), 빈 건축센터, 젊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21지구(Qaurtier21)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에곤 실레가 살아 숨쉬는 레오폴드 미술관

MQ 내에서 가장 유명한 레오폴드 미술관은 루돌프·엘리자베스 레오폴드 부부가 수집한 5000여점 이상의 작품을 소장, 전시한다. 레오폴드 부부는 에곤 실레 작품의 최대 컬렉터였다. 이곳이 화가 에곤 실레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지로 여겨지는 이유다. 단순한 배경 위를 가르는 공격적인 선으로 표현한 왜곡되고 과장된 육체, 몽롱하지만 어딘지 날카롭고 뇌쇄적인 눈빛의 그림 속 주인공들은 화폭 밖의 마주 선 사람들에게 은밀하고 농염한 이야기를 건네는 느낌이다.

에곤 실레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성적 욕망을 사실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해 당시 빈의 화단에 큰 충격을 안겼다. 기존의 아카데미 미술에 반기를 들고 빈 국립예술대학을 자퇴한 후 빈 분리파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 에곤 실레는 클림트와 동시대에 활동한 예술적 동지이자 클림트의 계보를 잇는 제자였다. 레오폴드 미술관을 방문할 만한 가치는, 1918년 전 유럽으로 번져 수많은 사상자를 낸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하기까지 28년의 짧은 생애에 그가 일궈낸 수많은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직선을 혐오한 괴짜 예술가, 훈데르트바서

에곤 실레와 클림트가 죽은 지 10년이 지난 1928년, 또 한 사람의 천재이자 정력가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가 빈에서 태어났다. 훈데르트바서는 화가, 건축가, 환경운동가라는 다양한 타이틀에 어울리는 다채로운 분야의 작업으로 빈의 문화예술을 풍요롭게 했다. 대표작으로는 1985년 건축해 시에서 운영하는 공공 주택인 훈데르트바서 하우스가 있다. 당시, 기존의 주거양식을 전복한 파격적인 건축기법으로 화제를 모았다. 유기적으로 흐르는 선과 다채롭고 화려한 색감은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집을 연상시킨다.

집 내부는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어 관람할 수 없다. 하지만 단지 내에 유료화장실은 꼭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 화장실의 입장료는 0.6유로로 비싼 편이다. 하지만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치가 듬뿍 담긴 공간을 체험할 수 있기에 전혀 아깝지 않다.

훈데르트바서 하우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쿤스트하우스 빈 역시 놓치기 아깝다. 훈데르트바서가 세운 미술관으로, 그의 취향과 신념과 상상력이 고스란히 응집된 공간이다. 마치 장난감을 크게 확대해서 세워놓은 느낌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이곳은 훈데르트바서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건물 내에는 그의 작품을 상품화한 아트숍과 카페가 있어 관람객의 즐거움은 배가된다.

빈 시내에 있는 훈데르트바서의 또 다른 대표작을 만나보고 싶다면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에 꼭 들러볼 일이다. 알록달록한 색을 덧입은 외벽, 각기 다른 형태의 창문들이 발산하는 조형미, 창과 벽을 타고 오르는 초록의 덩굴…. 도심의 혐오시설이 예술가의 상상력과 손길을 거쳐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여행팁

공용어는 독일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어에 능통하다. 화폐는 유로를 사용한다. 대한항공이 인천~빈 노선을 주 3회(화, 목, 토) 운항한다. 대중교통으로는 지하철, 트램, 버스가 있다. 티켓은 공용으로 사용되며 정류장 자판기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레오폴드 뮤지엄(leopoldmuseum.org)은 매주 화요일 휴관한다. 갤러리 내부와 작품은 플래시를 사용하지 않으면 촬영할 수 있다. MQ 박물관 지구의 전시와 관련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mqw.at)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훈데르트 바서의 쿤스트하우스 빈(kunsthauswien.com)은 매주 월요일(휴일일 경우 제외) 관람권을 50% 할인해준다

빈=문유선 여행작가 hellomygrap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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