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은 흔히 쓴맛, 신맛, 짠맛, 단맛 등 4가지로 분류된다. 이 중에서 우리 인류가 가장 선호해 왔던 맛은 단연 단맛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류는 예전부터 단맛을 내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인류가 가장 손쉽게 단맛을 내는 재료로 활용한 것은 벌꿀이다. 하지만 벌꿀은 구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필요한 만큼 대량생산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 벌꿀은 특히 귀한 재료로 여겨졌다. 인류는 단맛을 내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왔는데, 대표적으로 대나무에서 단맛을 추출해 내는 법을 개발하거나 캐나다 등지에서는 커다란 냄비에 단풍 수액을 넣고 메이플(maple) 시립을 추출해 단맛을 내곤 했다. 인류가 사탕수수와 사탕무를 통해 설탕을 추출하기 전까지 단맛을 내는 일이란 이처럼 어렵고 귀한 작업이었다.

노예들을 동원한 설탕 생산

사탕수수와 사탕무를 통해 단맛을 추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곧바로 이들을 통해 설탕을 쉽게 가공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기후와 노동력 때문이다. 사탕수수의 재배는 적당한 강우량과 온도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토양의 비료분을 소모시키기 때문에 토질이 쉽게 황폐화되는 경향이 있다. 즉, 사탕수수는 한 곳에서 연이어 지속적으로 경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욱 중요한 요인은 재배한 사탕수수를 가공해 설탕을 추출하는 과정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사탕수수는 베어낸 후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그것을 분쇄한 다음 원액이 되는 설탕즙을 짜내는가가 관건인데, 이 타이밍에 설탕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노예 내지 노예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거 필요했다. 이처럼 설탕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비옥한 토지와 노동력이 뒷받침돼야 했는데, 유럽의 지배계층이 설탕 생산에 있어 식민지를 주목하게 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었다.

결국 유럽 대륙의 지배계층들은 식민지로부터 설탕을 생산기에 이른다. 그 결과 그들은 브라질이나 카리브해의 섬들에서 사탕수수 생산해 설탕을 제조할 수 있는 대규모 농장인 ‘플랜테이션(plantation)’을 구상하기에 이른다. 플랜테이션이란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투입하고 후진국은 값싼 노동력을 제공해 전개하는 대규모 기업식 농업을 말한다. 초기에는 식민지의 비옥한 토지에서 이들 지역에 백인 노동자들을 데려와 일을 시켜봤지만, 사탕수수 재배 규모가 더욱 커지자 아프리카 흑인 노동자들을 활용하는 방안이 도입됐다. 수십만 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이나 카리브 지역의 여러 섬에 해당 지역 원주민도 아닌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비율이 더 높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이들 지역에서 아프리카 토속 종교와 크리스트교가 혼합된 부두교가 이색 종교로 자리매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인들이 오늘날 이들 지역의 인구 구조마저 변화시킬 만큼 수십만명의 아프리카 노동자들을 이주시켜 사탕수수 재배를 재배한 것이 단순히 단맛을 내기 위한 향료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당시 설탕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설탕은 다양한 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16~17세기에는 유럽에서도 설탕은 결핵 치료 등 주요 질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설탕은 신분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설탕은 아시아에서 수입된 후추나 기타 향신료 못지 않은 고급 조미료였기 때문이다. 특히 설탕은 다른 조미료와 달리 신비로운 흰색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국왕이나 귀족의 파티나 의례를 화려하게 장식하곤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설탕은 곧 권위를 상징하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다양한 용도로 설탕이 활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18세기 무렵부터는 일반 서민들의 아침식사에 등장하는 조미료가 되었다. 설탕이 대량 생산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 많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해 올 수밖에 없었다.

관료들의 사적 이익을 왜 못막나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소수의 식민지 경영자들이 어떻게 수많은 아프리카 노예들을 통제할 수 있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수십만명의 흑인들이 먼 타국까지 강제로 끌려와 고된 노역에 동원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소수의 유럽인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던 것이다. 수십만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졌을까?

이 부분에 대한 해답은 ‘공공선택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공공선택이론이란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제임스 뷰캐넌 교수가 주창한 이론으로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들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이론이다. 그들 역시 공익을 추구하기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왜 정치인이나 정부 관료가 사적 이익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이 이들을 막지 못하는가 하는 부분이다.

뷰캐넌 교수는 이러한 원인을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를 통해 설명하였다. 예를 들어, 특정 정치인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 해당 지역구에 선심성 행정을 펼치고자 커다란 공원을 건설하려고 한다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실제 자신의 지역구에는 인구수가 얼마 되지 않아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원을 건설하더라도 이로 인해 유발되는 국가 전체의 편익은 크지 않다. 즉, 투여한 비용에 비해 얻는 편익이 더 적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러한 불합리한 정책은 손쉽게 집행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것은 어느 누구도 이같이 불합리한 정책이 집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한 정책을 집행한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일반 국민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세금은 굉장히 미미한 수준이다. 그것은 해당 정책에 필요한 자금을 전 국민이 함께 부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개인이 불합리한 정책이 집행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위에 참여하거나 직접 탄원서를 작성하는 등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합리적인 국민이라면 정치인이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던 말던 이를 못 본 척 무시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불합리한 정책 집행으로 인해 자신이 지불해야 할 비용은 소액의 세금이지만 불필요한 소액의 세금 지출을 막기 위해서는 귀중한 시간과 더 큰 노력을 투여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치인의 사적 추구 행위를 선뜻 나서 막는 행위는 결코 합리적인 선택일 수 없기 때문이다.

노예들의 합리적 무시

신대륙에 끌려와 노예로 활동하는 수십만명의 노예들이 소수의 유럽인들에게 저항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럽인에게 저항할 경우 본인이 치러야 할 대가는 죽음을 각오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얻게 되는 혜택은 어차피 본국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에서 다소간의 휴식 내지 안락함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신대륙에 계속 남는다 하더라도 또 다른 유럽인이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은 다시 말해 저항으로 인해 얻게 된 편익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아도 다른 누군가가 나서 유럽인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그 혜택은 본인도 함께 누리게 된다. 이 역시 본인이 먼저 저항하기를 꺼리게 되는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결국 당시 수십만명의 흑인 노예들이 소수의 백인 경영자에게 저항하지 못한 것은 합리적 무시에 해당한다.

공공선택이론은 오늘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목격하게 되는 일련의 상황들을 설명하는 데 유용한 프레임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공공선택이론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은 다른 경제이론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이론이다. 그 때문에 공공선택이론은 공공선택이론이 태동하기 휠씬 이전의 여러 역사적 사건과 원인을 설명하는 데도 유용한 것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 aijen@kdi.re.kr


< 경제 용어 풀이 >

▨ 공공선택 이론

공공선택이론이란 공공부문에서 전개되는 제도적 상호작용을 설명하고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이론을 총칭한다. 특히 공공선택이론은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가 관료 역시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소수의 위정자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태를 막지 못하는 것은 막기 위한 노력에 비해 얻게 되는 이득이 작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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