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인공지능 프로젝트…25개 대학·연구기관 참여
모토로라 출신 키틀로스가 벤처기업 '시리' 창업 주도
2010년 음성인식 앱 개발…스티브 잡스가 3주 뒤 인수

애플 음성개인비서 ‘시리(Siri)’가 연일 화제다. 차세대 모바일 운영체제(OS) iOS6 개발자 버전을 내려받아 시리를 사용해본 결과 한국어 인식률이 의외로 높고 답변이 다양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정리한 ‘시리의 역사’ 자료에 따르면 시리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장기간 진행한 연구 프로젝트다. 미국 국방부는 인공지능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CALO(Cognitive Assistant that Learns and Organizes) 프로젝트 연구비 2억달러를 지원했다. ‘학습하고 조직할 수 있는 인식비서’로 해석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는 인공지능 관련 연구지원 금액이 미국 역사상 가장 많다.

이 프로젝트는 스탠퍼드대에서 분리된 SRI인터내셔널이 주도했다. 미국 25개 대학 및 연구기관의 연구원 300여명이 참여했다. 투입된 연구비나 인력 규모가 크기도 하지만 아이폰이 나오기 4년 전에 연구가 시작됐다는 사실도 놀랍다. 한국에서는 미국에서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야 비슷한 연구가 시작됐다.

SRI인터내셔널은 2007년 12월 CALO 중에서 ‘음성개인비서 연구부문’을 독립시켜 시리라는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모토로라 간부 출신인 대그 키틀로스가 창업을 주도했고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시리는 아이폰을 비롯한 iOS 디바이스용 시리 앱(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해 2010년 4월 애플 앱스토어에 등록했다.

애플과 시리의 인연은 그로부터 3주 후 시작됐다. 스티브 잡스가 키틀로스에게 전화를 걸어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시리는 창업을 전후해 2400만달러를 조달한 터라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SRI인터내셔널은 애플 같은 기업에 이 기술을 넘기면 널리 쓰이겠다고 판단해 매각했다. 매각대금은 2억달러로 알려졌다.
시리는 iOS 앱을 내놓을 당시 ‘안드로이드용과 블랙베리용도 내놓겠다’고 밝혔으나 애플에 인수되는 바람에 무산됐다. 애플은 인수 후 1년6개월 후인 2011년 10월 시리 앱을 앱스토어에서 내렸다. 곧이어 아이폰4S를 공개하면서 시리를 기본 기능으로 선보였다. 미국 국방부 돈으로 장기간에 걸쳐 개발한 기술이 아이폰에만 녹아들어간 것이다.

시리는 노르웨이어로 ‘당신을 승리로 이끄는 예쁜 여인’을 뜻한다. 노르웨이계인 시리 창업자 키틀로스는 딸을 낳으면 이름을 ‘시리’로 지으려 했으나 아들을 낳았다. 그는 회사 매각 후 애플에서 아이폰 적용 연구를 하다가 1년반 만에 퇴사했다. 그때 그는 “고향 시카고로 돌아가 공상과학소설이나 쓰겠다”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애플은 시리를 인수해 아이폰에 적용함으로써 음성개인비서 부문에서 주도권을 잡았다. 이 기술은 음성 검색, 티켓 예매, 식당 예약 등은 물론 자동차·TV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장명길 ETRI 책임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장기간에 걸쳐 2억달러나 지원한 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고 말했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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