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30년대 가족·결혼, 전통과 근대적 형태 충돌
현모양처서 대안가족까지 기사·소설 등 문헌 통해 조명

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 / 김경일 지음 / 푸른역사 / 480쪽 / 2만8000원

한국사회에서 가족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무조건적 사랑과 정서적 안정을 주는 공동체의 측면이 있는가 하면, 가장에 대한 복종과 부모 자식 간의 폭력 등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만혼과 독신의 증가 추세로 인해 소멸될 것이란 주장도 있고, 사회 안전망의 붕괴로 마지막 남은 안식처는 가족뿐이라는 진단도 있다.

탈근대와 근대의 가족 형태가 혼재돼 있는 한국사회. 그러나 100년을 채 못 거슬러 올라가면 이제 막 근대가 도착해 봉건적 가족형태와 섞이기 시작하는 시기가 있다. 《근대의 가족, 근대의 결혼》은 바로 이 1920~1930년대의 가족과 결혼의 형태를 조명하는 책이다. 저자가 2004년 펴낸 《여성의 근대, 근대의 여성》의 후속작 격인 이 책은 이 시기의 결혼과 조혼, 가족과 현모양처, 이혼, 가족의 대안 형태 등을 고찰한다. 근대교육을 받은 신여성뿐 아니라 일반 여성들이 당면한 현실과 이들의 변화를 보면서 봉건적 형태에서 오늘날의 가족으로 바뀌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개인 생애의 전개를 염두에 두고 1부 결혼, 2부 가족, 3부 이혼, 4부 대안과 비전 네 부분으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서구와 일본, 즉 근대의 영향으로 ‘이상적 결혼’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면서 나타나는 전통과 근대의 갈등을 살핀다. 2부에서는 근대 가족 안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위치를 검토하고, 현모양처와 정조 개념까지 이어서 조사한다. 3부에서는 이혼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이 시기의 이혼이 여성에게 이혼의 권리를 부여하지 않은 조선의 전통과 ‘협의 이혼’을 도입한 일제의 근대적 법 사이에서 편의적으로 운용돼 왔다고 말한다. 4부에서는 별거와 독신, 우애결혼 등 대안 가족의 이념을 살펴본다.

학술서지만 당시의 문헌 자료를 많이 인용하고 있어 흥미를 가지기 비교적 쉽다. 부모와 집안에 의한 강제결혼에서 자신의 의지에 기반한 자유결혼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던 1924년 ‘동아일보’에 보도된 사건과 뒤이은 논쟁을 소개하는 식이다.

전라남도 담양에 사는 19세 여성 정차숙이 ‘임의결혼’을 한 것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양반집 처녀로 근대 학교 교육도 받지 않았지만 정차숙은 아버지가 자신의 혼처를 구하려고 충청도로 간 사이 이전부터 사귀어 오던 박평길과 혼인해 버린다. 부모의 승낙 없이 자유의지로 신식 결혼을 한 것이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서울의 지식인들은 논쟁을 벌였다. 저자는 ‘사직동인’과 ‘인사동인’ ‘체부동인’ 등이 투고한 찬반 글을 소개하며 당시의 생각들을 보여준다. 익숙한 동 이름과 신문을 통해 논쟁하는 모습이 당시를 멀지 않은 역사로 느끼게 한다.

저자는 당시 발간된 신문과 잡지는 물론 결혼과 가족을 주제로 한 소설들도 활용하고 있다. 허구에 근거한 것이라 해도 소설에는 당대의 사회 상황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시기 가족과 결혼의 풍경에는 강제결혼을 반대해 도피한 신부, 조혼에서 비롯된 빈번한 남편 살해 등 어두운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사랑과 결혼의 일치를 위한 이상, 가정의 평화와 상호 이해를 통한 근대 가족 추구와 같은 노력들도 존재했다. 근대와 탈근대가 공존하며 심한 가치 혼란을 겪고 있는 지금, 전통과 근대의 충돌로 급격히 변화하던 당시를 되돌아 보는 것도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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