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도 허물어야 할 청계고가 많다"

입력 2012-05-28 16:50 수정 2012-05-29 03:46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일본 게이오대 교수

1982년 서울~구미 연결…미국 이어 두 번째 성공, 더 많은 발전 기회 잡아
속도 빠르다고 강국 안돼…경험 살려 개도국 선도를, 30일 30주년 공로상 수상

< 청계고가 : 불합리한 규제·남용 >




“1982년 5월 말 경북 구미 한국전자기술연구소(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전신)에 있을 때였습니다. 한 연구원이 달려와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서울대 컴퓨터에 로그인을 시도했는데 그쪽 컴퓨터에 연결됐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웹사이트 접속이죠. 이 상태에서 다시 구미 컴퓨터에 로그인했습니다. 당시 전화선 품질이 아주 나빴는데도 성공했습니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일본 게이오대 교수(KAIST 명예교수·69)는 국내에서 인터넷이 처음 개통된 순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서 UCLA와 스탠퍼드대가 1969년 인터넷 연결에 성공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한국에서 이뤄낸 것을 회상하면서 “엔지니어들 생각은 똑같지 뭐”라고 말했다.

30일 방송통신위원회 주최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인터넷 30주년 기념식’에서 공로상을 받을 전 교수를 지난 25일 자택에서 만났다. 기념식 기조연설문을 작성하던 중이었는지 책상이 어지러웠다. 컴퓨터는 두 대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전 교수 자신이, 다른 하나는 부인인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쓰는 컴퓨터였다.

▷최근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름이 올랐습니다.

“인터넷학회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으로 헌정식을 했습니다. 인터넷 개발에 공헌한 사람, 활성화에 공헌한 사람, 세계화에 공헌한 사람 30명을 명예의 전당에 헌정했습니다. 저는 세계화 공로를 인정받아 그 자리에 갔습니다. 국내에서는 저를 ‘인터넷 개발자’라고 말하지만 국제적으로는 인터넷 세계화 공로를 더 인정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세계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15개가 넘는 인터넷 국제조직을 만들었습니다. 2년에 하나꼴로 만든 셈이지요. 대표적인 게 ‘에이판(APAN)’으로 불리는 ‘아시아·태평양초고속인터넷연구망’입니다. 지금은 인터넷 박물관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박물관, 아시아 박물관, 세계 박물관 등 3개 박물관을 동시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 교수는 1970년대 말 정부가 해외 석학들을 대거 영입할 때 ‘컴퓨터 국산화’ 요청을 받고 귀국했다. 미국 UCLA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지 5년밖에 안 됐는데 회사 간부나 교수의 몇 배나 되는 월급과 승용차, 운전기사까지 지원받았다고 했다. 그는 “석유파동이 나는 바람에 청와대조차 난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해외 석학들을 데려왔고 그때 귀국했던 100여명의 석학이 각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뒀다”고 회고했다.

전 교수는 미국 국방부의 ‘알파넷 기술’을 가져오고 싶었는데 미국이 기술을 넘겨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직접 개발하는 수밖에 없었고 1982년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인터넷 개통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대만이나 싱가포르가 요즘 20주년 기념식을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들보다 10년이나 빨랐던 만큼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돈도 없고 기술도 없는 상황에서 인터넷 개발에 몰두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전자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 신분으로 서울대 대학원에서 강의를 했고 인터넷 첫 개통 직후 KAIST 교수로 갔는데, 젊은이들이 똑똑하고 열성적이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젊은 연구원들이 열심히 덤벼드는 통에 자신도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문제도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누구나 사랑하는 인프라가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한발 앞서가다 보니 좋지 않은 것도 먼저 경험하게 됐습니다. ‘O양의 비디오’에서 시작이 됐고, 최진실 씨가 자살했을 땐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인터넷 폭력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 악용이 우리만큼 심각한 나라는 없습니다. 다른 나라도 다 경험하게 될 텐데, 먼저 극복하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려줘야 합니다. 그래야 인터넷 선도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선도 국가가 무엇입니까.

“인터넷 강국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 중국입니다. 우리가 지향할 바는 인터넷 강국이 아닙니다. 인터넷 주도 국가나 선도 국가가 돼야 하는데, 주도 국가가 되려면 30년 이상, 선도 국가가 되려면 10년 이상 열심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진국과 개도국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아프리카가 도약하고 있는데 가나 탄자니아 같은 가능성이 있는 나라부터 도와줘 시장을 개척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회를 놓치는 사이에 중국이 들어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국이 인터넷 강국이라는 말에는 동의합니까.

“초고속인터넷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을 고속도로에 비유하는데 우리나라를 보십시오. 청계고가도로 없애니까 다들 좋아했잖습니까. 인터넷에도 청계고가도로 같은 골칫덩이가 많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인터넷 뱅킹을 했는데 너무 복잡합니다. 너무 복잡하다면 청계고가도로 허물듯이 고쳐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저런 실수를 했다고 공개하고 국제회의도 열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전 교수는 통신네트워크 사용료를 사업자에 별도로 부과해야 하는지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망 중립성’ 논란에 대해서는 직답을 피했다. 인터넷에서 한발 앞서가다 보니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문제를 먼저 경험하는 측면이 있고, 스마트TV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하기만 했다. 미국이나 일본도 경험하지 못한 복잡한 문제를 한국이 먼저 경험하고 해결한다면 세계 인터넷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공계 대학생들이 다른 분야로 취업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고 했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정부 부처에도 가고, 법조계에도 가고, 의사도 돼야 바람직하다는 논리였다. 전자공학만 알아서는 안 되고 컴퓨터와 법, 컴퓨터와 의료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을 시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시작한 지 2시간쯤 지났다. 건강은 괜찮은지, 어떤 운동을 하는지 물었다.

“요즘 하루 2시간씩 운동을 합니다. 일본에서는 바닷가에 사는데 날마다 서핑을 합니다. 서핑을 한다고 하면 ‘웹서핑이요?’하고 되묻는 사람들이 많은데 파도타기를 실제로 합니다. 아침에 서핑을 하고 저녁에도 서핑하고. 한국에 오면 산에 가든지 자전거를 탑니다. 수영선수를 하다가 고교 때 그만뒀습니다. 등산도 많이 했습니다. 유럽 3대 북벽(마테호른, 그랑드 조라스, 아이거)을 처음 등반해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학술(인터넷)과 스포츠(등반) 두 분야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사람은 드물 겁니다.”

김광현 IT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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