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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의 가장 근본적 요소는 각성한 민중이다.”

독립운동가 송재(松齋) 서재필은 1921년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는 민중 계몽이 부국강병을 이루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열강의 침략에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1896년, 송재는 한국 최초의 대중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해 민주주의 사상을 보급했다.

송재는 1864년 1월7일 전남 보성군에서 태어났다. 148년 전 오늘이다. 1884년 개화사상을 내걸고 갑신정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국외로 망명했지만, 1895년 다시 돌아와 이듬해 독립협회를 창설했다. 그는 협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열강의 이권 침탈에 맞섰다. 1897년엔 국민 성금을 모아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다. 이런 활동은 열강의 미움을 샀고, 1898년 조국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또다시 겪었다.
송재는 암에 노환·과로가 겹쳐 1951년 1월5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숨을 거뒀다. 미국에서도 1920년 임시정부 구미(유럽·미국)위원장을 지내는 등 조국에 대한 헌신을 멈추지 않았다. 정부는 이런 업적을 기려 1977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워싱턴시는 2008년 5월6일 한국총영사관 앞에 송재의 동상을 세우고 이 날을 ‘서재필의 날’로 지정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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