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위기 실물로 전이

기업들 투자 꺼리면서 자금조달 악화
고유가·탑승객 감소…노사갈등도 심각

미국 3위 항공업체 아메리칸에어라인의 모회사 AMR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표면적 이유는 유류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채무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유럽 재정위기와 경기침체 여파로 항공기 이용 고객이 줄고 투자자들이 항공업계에 대한 투자를 꺼리면서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긴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 재정위기가 미국 대기업의 파산이라는 실물경제 위기로 전이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인건비 감축 노력 허사로

지난해 미국의 대부분의 항공사들은 유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유독 아메리칸에어라인은 적자에 허덕였다. 이 회사는 올해도 흑자전환에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 아메리칸에어라인의 수익성을 가장 짓누르는 요인은 인건비다. 회사 측은 다른 항공사에 비해 8억달러나 인건비 부담이 크다고 주장하며 2006년부터 조종사, 승무원, 기술자 등 노조와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협상을 벌여왔다. 5년여에 걸친 협상노력이 최근 노조의 반대로 허사로 돌아가면서 결국 파산보호를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종업원들은 협상을 통해 2003년 회사 파산을 막기 위해 양보한 16억달러를 되돌려 받으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끝까지 버텼지만 유럽위기가 발목

델타, 노스웨스트 등 아메리칸에어라인의 경쟁사들은 2001년 9·11 테러 후 항공업계가 위기에 처하자 파산보호 신청을 통해 채무를 탕감하고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항공업계는 업체 간 합종연횡을 통해 대형화, 효율화를 추진했다. 채무를 조정하면서 정상적으로 영업할 수 있는 ‘챕터 11’을 구조조정에 활용한 셈이다.

하지만 항공업계 1위였던 아메리칸에어라인은 끝까지 파산보호를 신청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버티며 종업원들과 채권자들을 설득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유가와 고객 감소는 버틸 수 있었어도 유럽 재정위기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토머스 호튼 최고경영자는 “이사회는 파산보호 신청이 회사의 수익성과 영업 신축성, 재정 안정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바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실물경제 전이 확대되나

파산보호를 신청했지만 아메리칸에어라인의 항공 스케줄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회사 측은 밝혔다. 또 41억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어 협력업체 등에 대금을 지급하는 것에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회사 측은 덧붙였다. 파산보호 신청이 고객이나 항공업계에 당장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아메리칸에어라인이 금융회사가 아닌 일반 대기업이 유럽 재정위기로 파산 보호를 신청한 사실상 첫 사례가 되면서 미국 대기업들의 연쇄 파산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현재 미국 항공업계는 고유가와 고객 감소 등으로 겨우 운영을 해 나가는 수준”이라며 “아메리칸에어라인의 파산신청에 놀란 투자자들과 채권자들이 업계로부터 등을 돌려 조달비용이 치솟을 경우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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