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 직원과 15km 걸으며 인생 논하는 '트레킹 경영'

친구들은 '정신 나갔냐' 했지만
인생의 승부수 던져 보란듯이 성공…황무지 택한 '젊은날' 지금도 뿌듯

직원 이름은 무조건 외운다
한 명 한 명 부르며 술 따라주다 회식 자리서 실려나간 적도

"회사는 꿈을 지원해주는 곳"
트레킹하며 직장생활 멘토 자처…"주말 뺏어 미안" 트레킹화 선물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저자 김난도 교수가 그토록 자극을 받았다고 하는 거창고 '취업 10계명' 중 세 번째 계명.'모든 조건이 갖춰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미국에서 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전형적인 엘리트 공학도가 30대 중반 세 갈래 길에 선다.

미국 최대 비철금속 회사의 연구원,국내 대학의 교수직,국내 구리 업체의 제련소 건설 총괄 책임자.그는 흡사 거창고 취업 계명처럼 '모든 조건이 갖춰진' 두 제안을 뿌리치고,'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같은 제련소 건설의 일을 택한다. 그리고는 20년가량 지난 지금,아시아 최대의 동(銅)제련 업체 최고경영자(CEO)자리에 올랐다. 강성원 LS니꼬동제련 사장(54)의 얘기다.

◆완벽 스펙의 엄친아

강 사장은 요즘 표현으로 '완벽 스펙'을 갖춘 '엄친아'다. 4 · 19 시위에도 참여했던 명문 공립초등학교 수송초등학교를 나왔고,고교 · 대학은 이른바 KS다. 경기고 71회로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김신 삼성물산 사장,황주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원장 등이 동기다. 학과별 세계 대학 평가에서 국내 대학 학과 중 랭킹이 가장 높다는 서울대 금속공학과 75학번으로,권동일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그와 고교 및 대학 동창이다. ROTC 17기로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조수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사장은 학군단 동기다.

강 사장은 1979~1981년 격동기에 군복무를 했다. 중위 때인 1980년 육군 9사단 백마부대에 배치돼 사단장 전속부관으로 선발됐다. 당시 사단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그러나 그해 5월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노 전 대통령이 보안사령관에 임명되면서 실제로 전속부관 근무는 하지 않았다. 대신 병기장교로 복무하고 전역 후 한때 대우중공업에서 한국형 장갑차(KIFV)개발 관련 업무를 하기도 했다.

◆'칭찬해주고 싶은 내 젊은날의 선택'

강 사장은 1985년,28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을 떠난다. 당시 재료 공학의 주류는 반도체나 신소재 등이었으나,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제련 분야를 택했다. 학위는 미국 최대의 납과 아연의 산지이자,건식제련(1000도 이상 고온에서 광석을 녹여 금속을 추출하는 제련방식)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주리대에서 받았다.

박사학위를 딴 뒤 당초 미국 기업에 취직할 생각이었으나,당시 미국 철강산업이 최악의 불황으로 여의치 않자 귀국,1991년 LS니꼬동제련의 전신인 럭키금속에 과장급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3년간 현장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선택의 순간을 맞는다. 미국 최대 비철금속 기업인 펠프스닷지(현 프리포트 맥모란)로부터의 연구원 스카우트 제의와 국내 대학으로부터 교수직 제의,그리고 럭키금속의 제2제련소 건설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 제의.당시 그의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대학 강단에 서 있거나 국내외 유수 기업에서 자리 잡고 있던 터라 펠프스닷지의 연구원이나 대학 교수직에 마음이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로부터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에 뛰어든다.

'내 인생에 제련소 건설을 지휘할 기회가 또다시 올까. ''내 인생의 승부를 걸어볼 때가 온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미치자 프로스트의 시구처럼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하게 됐다. 그때를 되돌아보는 강 사장의 한마디."지금 생각해도 당시 그런 선택을 한 젊은날의 나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

◆미쓰비시도 반한 '미쓰비시 방식'

강 사장의 표현대로 제련소 건설 시기는 그가 인생의 승부수를 던진 기간이었다. 그는 3년 가까운 공사 기간 동안 단 하루도 쉬어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항상 남보다 1시간 일찍 출근했고,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를 해 가면서 제련소를 지어갔다. 공사 막바지 때는 공정상의 문제점을 해결하느라 며칠씩 현장에서 밤을 새워가며 매달렸다. 그러자 평소 회사일에 이해심 많은 그의 부인마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아이들이 아빠의 회사 생활을 떠올리며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는 말부터 꺼낼 때면 지금도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제련소 건설이 끝나고도 마음 고생은 한동안 이어졌다. 제련소 완공 시기와 외환위기가 맞물려 회사가 기름값 댈 돈도 없다면서 가동 중단을 지시해 눈물로 '항명'하기도 했다. 공사 기간 중 화재와 근로자 안전 사고를 처리하면서는 인생을 배웠다.

LS니꼬동제련의 제2제련소는 이 회사 성장의 기틀이 됐다. 1990년대 내내 적자에 시달리던 이 회사는 1990년대 말 제2제련소 완공을 기점으로 흑자로 돌아서 지금까지 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미쓰비시의 동제련 기술을 적용한 이 제련소는 미쓰비시 측에서도 전 세계에 자사 방식의 모델 케이스로 내세울 정도다. 세계 동 제련소 중 캐시 코스트(파운드당 제조비)가 가장 낮아 효율성 측면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이를 인정받아 지난해 한국공학한림원으로부터 '한국을 먹여살린 100대 기술'에 선정되기도 했다.

◆소주와 트레킹화의 '스킨십 경영'

강 사장은 LS니꼬동제련의 첫 공채 출신 CEO다. 그 이전 7명의 CEO들은 모두 LG그룹 내 주력 계열사 출신으로, LS니꼬동제련에 입사해 사장까지 오른 사람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또 20년간의 회사 생활 중 17년간을 온산 제련소 현장에서 보냈다. 본사에 출장올 때를 제외하고는 서울을 찾지 않았다. 제사 때도 모친이 내려왔고,친구들 사이에서는 '잠수 탔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였다.

그는 주말에 서울에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는 대신 현장 직원들과 어울렸다. 신입사원을 거치지 못했다는 자신만의 콤플렉스를 만회하기 위해 과장 시절부터 '기사님'하며 어려워하던 중년의 현장 직원들을 집으로 데려와 밥과 술을 같이했다. 500여명의 현장 직원 중 절반 정도는 그의 집에서 술잔을 나눴을 정도다. 그의 주량은 집에서 가족들과 있을 때는 와인 두 잔이지만,직원들과 섞일 때는 소주 5병까지로 늘어나는 '고무줄 주량'이다. 술자리에서는 아무리 직원이 많아도 그 이름을 다 외워,반드시 이름을 불러가며 술을 따라줘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한번은 노조원 50여명과 노사협의회 회식을 갖다가 그들의 이름을 모두 불러가며 술잔을 주고받다 결국 실려가고 말았다.

강 사장은 요즘 술 대신 트레킹을 소통의 수단으로 삼는다. 건강상의 이유와 함께 술을 먹다 이름이 헷갈리는 게 싫어서다. 매달 온산 제련소와 서울 본사를 번갈아가며 매번 12명 정도의 직원들과 15㎞ 정도를 함께 걸으며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주말 시간을 빼앗은 보답으로 LS네트웍스의 '프로스펙스'트레킹화까지 선물로 챙겨준다.

강 사장이 '트레킹 경영'에서 인생과 직장의 멘토로서 빼놓지 않는 말이다. "사람은 어느 시점이 돼서는 인생의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그 승부는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정한 것을 내가 증명하는 과정입니다. 엔지니어 출신으로 회사 생활의 거의 전부를 공장에서 보냈지만,최고경영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또 세계 최고 제련소 건설의 꿈도 결국 이루지 않았습니까. 본인이 원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고,회사는 그 꿈을 지원해주는 곳입니다. "

윤성민/이유정 기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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