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 그림'의 대가 김동유 목원대 교수

깨진 기와·접시에서 영감 얻어 영화배우 등 파워피플 단골 소재
화가란 평생 해도 빛 보기 힘든데 40대에 스타 됐으니 출세 빠른 편
작품의 감수성은 세대와 무관…당대 사회상 담겨 있으면 통해

경복궁 옆에 있는 갤러리현대 신관 건물.지하 1층 전시실 벽에 커다란 인물화들이 걸려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은막의 전설' 마릴린 먼로다. 가까이 가서 보면 무수히 많은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점처럼 새겨져 있다. '마릴린 먼로 vs 존 F. 케네디'(120.7×97㎝)는 우표만한 케네디 얼굴을 모자이크해 만든 작품.가로 세로 28개씩 총 784개의 작은 케네디가 들어 있다. 1000개가 넘는 얼굴을 그린 작품도 있다.

왜 하필 마릴린 먼로와 케네디일까. 인물 속에 인물을 그리는 '이중 그림' 화가 김동유 목원대 교수(46)는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라면 가장 널리 알려진 대중 스타이면서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며 "정치적 상징 코드인 케네디와 함께 이들의 파워가 워낙 세기 때문에 주인공으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 그림을 보면서 둘 사이의 염문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처음부터 그걸 염두에 두고 작업하지는 않았어요. 먼로와 다른 사람들을 합친 작품들도 많거든요. "

그의 '마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은 2006년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3억2000만원에 낙찰돼 당시 현존 국내 작가로는 해외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추정가의 25배가 넘는 낙찰가여서 세계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이 작품도 멀리서 보면 마릴린 먼로의 모습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손으로 그린 마오쩌둥의 얼굴들이 드러나는 방식이다.

세포처럼 작은 이미지들로 전체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픽셀 모자이크 회화'의 대가인 그는 2009년 국제미술사이트 '아트프라이스'가 발표한 '1945년 이후 출생한 세계 현대미술 작가 중 최근 1년간 가장 많이 거래된 작가 100명' 가운데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55위에 들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목원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해외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국내파 화가다. 그것도 미술계를 휩쓰는 유명 대학이 아니라 지방대 출신에 공주에서 활동하는 지역 작가의 한계를 딛고 유명 작가로 발돋움했다. 지난해부터는 모교 교수로 강단에 서고 있다.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작업할 시간이 줄지 않을까 걱정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작업에만 몰입하다 보면 작품을 보는 시야가 좁아질 수 있는데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접하고 서로 교통하니까 새로운 관점이 생기더군요. 전혀 뜻밖의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

그 전까지는 산 속이나 교외 지역에 작업실을 마련해 놓고 전업작가로 작품에만 열중했다. 남보다 늦은 40대에 빛을 본 셈인데 그는 "오히려 너무 일찍 유명해져서 부담스럽다"고 했다.

"말년에야 빛을 볼 수 있을까 말까 생각했는데 무척 빠른 거죠.물론 예전엔 그림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달랐잖아요. 작품의 내용이나 성향보다 외적인 것을 많이 보고,학교도 좋은 데 나와야 하고,유학도 갔다오면 더 좋고….저는 그럴 형편이나 수준이 안 됐고,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못했어요. 화가란 평생을 해도 빛을 볼까 말까 하다고 생각했죠.고흐나 이중섭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대가들도 생전에는 고생만 했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전 20년 정도 일찍 유명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

그의 작품을 보고 세계가 열광하는 것도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니까"라고 덤덤하게 표현했다.

"남이 보지 않는 시점으로 작품을 하는 것,그게 생명이죠.어릴 때부터 깨진 기왓장이나 접시 같은 걸 수집하는 취미를 가졌는데,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쓸데없는 것으로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매우 쓸 데가 있었어요. 어른들이 봤을 땐 쓸데없는 것이라도 그 나름의 맥을 갖고 있으니까. 지금은 제 작품이 유형화됐지만 2004년까지만 해도 특이한 작품으로만 여겨졌어요. 전시를 기획할 때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는데 제 작품은 일단 특이하니까,팔리는 것과 관계없이 소개해줬던 것 같아요. 사실 인물화를 집에다 걸어 놓는 사람은 잘 없죠."

대학 졸업 무렵인 1980년대 후반에는 비디오 아트나 설치미술 등이 유행했다. 전통적인 회화는 구태의연하게 여겨졌던 시절.많은 작가들이 새로운 매체와 장르로 전향하고 젊은이들도 그랬다. 그러나 그는 회화를 고집하면서 평면 회화가 어떻게 설치와 비디오 아트를 뛰어넘을 수 있는지 연구했다. 다양한 시점과 아날로그적인 요소를 활용하는 등 다른 매체를 넘어설 수 있는 회화의 힘을 고민한 끝에 나온 작품이 '이중 그림'이다.

"작품의 감수성은 세대와 무관하게 늘 통하지요. 유행하는 화풍과 관계없이 동시대의 사회상과 감성 같은 게 담겨 있다면 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나 비슷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제 작품에서 동양이든 서양이든 서로 관통하는 무언가를 느끼는 것 같아요. 좋을 때가 있으면 나쁠 때도 있는 것처럼 상황은 언제나 변하는데,저는 어려운 시절을 잘 견뎌온 셈이지요. "

그에게 그림은 한마디로 '욕망의 총합'이다. 어릴 때부터 그리고 만드는 걸 좋아했고 이를 통해 갖고 싶은 것을 실현하는 재미에 눈을 떴듯이 그림이란 근본적인 자기 표현이자 소유할 수 없는 욕망과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꿈꾸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3 때까지 생활기록부의 장래 희망란에 늘 화가라고 썼다. 어릴 때 말수가 너무 적어 부모님이 걱정할 정도였지만 물감을 다루거나 화학 성분으로 실험하는 것을 좋아했다. "혼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에 돌아다니다 깨진 옛날 접시와 기왓장,쪼개진 빗살무늬토기 같은 것들을 주워오곤 했죠.부모님은 싫어했지만….토끼와 닭 같은 동물을 키우는 것도 좋아해서 고등학교 진학할 땐 농업고등학교를 가겠다며 집안을 발칵 뒤집어놨죠.결국 공주고등학교 미술부에서 잔뼈가 굵으며 그림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

본격적인 작업은 대학원 졸업하고 군대 갔다온 뒤부터 시작했다. 먹고 살기 위해 입시미술학원에서 야간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고 작품은 주로 낮에 그렸다. 그 시절 지금의 부인도 만났다. 말이 없고 수줍음을 많이 탄다는 그가 어떻게 미대 지망 재수생을 꼬드겼을까.

"하하.말이 없어서 그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대요. 그때가 아니었으면 결혼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냥 사람만 보던 나이였으니까 가능했죠." 그러고 보니 말수가 적거나 숫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의 그림 속에서 웃고 있는 유명인들의 얼굴처럼 그의 웃는 표정도 다채롭고 유쾌하다.




英 여왕 즉위 60주년 기념展에 '다니애나 & 엘리자베스 2세' 출품



한국 화가로는 유일…앤디 워홀 등 거장 대거 참여



김동유 교수의 '다이애나 &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내년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0주년을 앞두고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전시 중이다. 영국에서 열리는 초상화 관련 전시로는 가장 큰 규모다. 여왕의 초상을 모티브로 한 작품만 모은 이색 전시회.참여 작가는 앤디 워홀,게르하르트 리히터,길버트 앤드 조지,휴 록,크리스 르빈,루시앙 프로이드 등 거장들이다. 그는 참여 작가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이 작품은 이전에도 런던에서 두 번이나 선보였고,지금은 싱가포르 컬렉터가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 빌린 것.그의 작업이 세계인의 눈을 끄는 것은 '이중 그림'이라는 독창성 덕분이다.

커다란 캔버스 위에 수많은 반명함판 사진 크기의 인물상을 일일이 붓으로 그려내며 전체적인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작업.

평론가들은 "전혀 새로운 상상을 경험하게 하는 김동유의 작업은 무수히 많은 이미지들이 마치 도장을 찍은 것처럼 모두 같아 보이지만 직접 손으로 그렸다는 점에서,또 각각의 표정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에서 '그림의 힘'과 '손의 힘'을 돌아보게 한다"고 평한다.

화면 속의 이미지들은 배경과 형태의 상관관계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개별 이미지가 아닌 상조관계로 거듭난다. 이것이 '증식'과 '생성'으로서의 멀티플 개념을 풀어내는 그의 회화적 결정체라는 것.어떤 이는 "작품의 부분들이 독자적으로 하나의 단위를 이루며 고립돼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서 같은,또 전체이면서 부분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김동유의 작품은 이중적인데 이는 다른 듯 같은,같은 듯 다른 그들의 욕망 구조를 건드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박천남 성곡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그의 작업을 1986~1998년의 '구상연구 시기',1999~2004년의 '점으로 만든 이미지 시기',그 이후의 '이중 얼굴 시기'로 구분하면서 "이 가운데 세 번째 시기에 그를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르게 한,대중 스타와 유명인의 얼굴을 이중적 방식으로 담아낸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소개했다.

만난 사람 = 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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