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명품 필기구 파버카스텔 회장
스토리가 있는 '특별한' 필기구
240년 된 나무로 한정판 제작…전세계 수집가 '희소성'에 열광
8대째 가업 이어온 가족기업
색연필 쥐고 공부한 어린이가 명품 필기구 쓰는 성인 될 때까지 충성도 높은 고객 만드는게 비결

디지털 기기의 홍수 속에 아날로그 제품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1980년대 PC가 상용화되자 도표 등을 손으로 그릴 필요가 줄어들었다. 1990년대 말 노트북이 확산되자 노트 시장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최근엔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급속히 퍼지고 있다.

올해 창립 250주년을 맞은 독일 필기구 기업 파버카스텔은 이런 여건과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연간 20억개 이상의 연필과 색연필을 생산하며 120여개 나라에 제품을 수출한다. 지난해(2009년 9월17일~2010년 9월16일) 매출은 4억5080만유로로 전년 대비 5.4% 증가했다. 8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가족기업이기도 하다. 파버카스텔은 빈센트 반 고흐,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애용한 브랜드이기도 하다.

1978년부터 파버카스텔을 이끌어온 안톤 볼프강 그라프 폰 파버카스텔 회장(70)이 제시한 지향점은 '소비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혁신'과 '수집가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다. 평범한 제품인 필기구에 스토리를 불어넣고 품질을 향상시켜 '특별한' 제품으로 만들어 낸 비결과 가족기업으로 장수기업이 된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진행했다.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제품이 살아남는 방법이 있습니까.


"디지털 제품의 확산은 막을 수 없는 대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에 대한 수요는 존재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십년 뒤에도 여전히 손으로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정서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끊임없이 손을 사용해야 합니다. 따라서 아날로그 제품은 교육 측면에서 더욱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될 것입니다. 또한 세계 인구가 늘어나고 신흥국과 개발도상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연필 등 아날로그 제품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입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어떤 제품이건 고객의 '삶의 동반자'가 된다는 목표를 추구하면 성장은 어렵지 않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항상 옆에 두고 쓰는 제품,그리고 그들이 커서 까다로운 소비자가 됐을 때도 계속 사용하고,만족하는 제품을 제공하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파버카스텔의 미래 성장동력은 뭡니까.

"어린이 시장에서는 놀이와 학습을 돕는 연필과 색연필,성인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제품군(群)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학용품은 교육적으로 가치 있고 아이들의 창의력을 북돋아줄 수 있습니다. 어린시절부터 형성된 브랜드 인지도와 충성도는 그들이 성인이 돼도 파버카스텔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또 산업화된 국가일수록 고령화가 진행되고 고급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므로 성인용의 경우 고품격 필기도구 및 액세서리가 시장성이 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효과도 큽니다. 처음 색연필을 쥐고 색칠 공부를 시작하는 어린이가 명품 필기도구를 원하는 까다로운 성인 소비자가 될 때까지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성장전략입니다. "

▼필기구는 단순합니다. 이를 혁신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제품 혁신은 현재 소비자들이 느끼는 부족함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런 혁신적 제품의 혜택은 소비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파버카스텔 제품 가운데 '퍼펙트 펜슬'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이것은 연필 한 자루에 지우개와 연필깎이가 모두 내장된 제품입니다. 연필 뒷부분에 지우개를 달고 뚜껑 안에 연필깎이를 넣었습니다. 연필을 사용하는 데 필수적인 두 개의 도구를 결합해 혁신적인 경쟁력을 부여한 것입니다. 물론 둥근 연필이 굴러가지 않도록 육각형 모양의 연필을 개발한 것도 파버카스텔이었습니다. " (그가 인터뷰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연필의 세계 표준을 정한 것도 이 회사다. 단단한 정도(H)와 진한 정도(B)에 따라 8B~8H까지 있는 연필심 등급을 세계 최초로 고안했다. 덕분에 사용자들은 용도에 따라 적합한 연필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브랜드는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게 비결입니다. 파버카스텔의 경우 수집가들이 사랑하는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높은 수준의 감각을 가진 수집가들이 제품을 갖게 되면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게 돼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회사는 10년 전 창립 240주년을 기념해 240년 된 올리브나무로 만든 만년필을 만들어 판매했습니다. '그라프 폰 파버 카스텔 컬렉션'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매년 한 종류의 제품만 수작업으로 만들어 그해에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맘모스 상아나 말갈기,호박 등 특별한 재료만 사용합니다. 제품마다 식별 숫자를 새겨넣었고 보증서와 함께 특별한 케이스로 포장합니다. 올해의 펜은 러시아산 비취 8조각으로 장식했습니다. 8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가족기업이라는 의미를 담았죠.한정판은 희소성 때문에 수집가들이 선호합니다. 이를 통해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심을 수 있습니다. "

▼기업이 장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통을 지키면서도 자신의 방식에 의문을 갖고 시대의 변화에 최적화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는 게 무엇인지 늘 고민해야 합니다. 파버카스텔의 경우 연필에서 시작해 펜 만년필 색연필 붓펜 색조화장품 액세서리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해왔습니다. 또 더 안전하고 보기 좋게,더 쥐기 쉽고 단단하게 제품들을 향상시켜왔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제품을 특별하게 개발해 경쟁자로부터 차별화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가족기업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경영진을 이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로 보는 인식입니다. 그래야 회사가 단기적인 성장에 얽매이지 않고 장기적 발전을 먼저 생각하는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파버카스텔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딛게 하는 것은 눈에 띄는 단기적인 도약이 아니라 과거에 옳다고 증명된 가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전통입니다. 모든 작은 발걸음(노력)들이 합쳐져 큰 열매를 이룬다는 믿음을 갖고 회사를 변화에 맞춰 지속적으로 최적화시켜야 합니다. 또 가족기업은 지속가능성을 입증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미덕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기업들과 차별화해야 합니다. 일례로 파버카스텔은 매년 브라질에 2만여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

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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