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 정무위 통과…대기업들 "배상책임 너무 커"
납품단가 조정협의권 일단 제동
앞으로 대기업이 하청업체의 기술을 유용할 경우 피해액의 3배에 달하는 손실을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다. 또 외부 경영환경 변화로 인해 하도급 대금을 삭감할 때도 원사업자인 대기업이 입증을 해야 한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10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하도급거래 공정에 관한 법률'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의 핵심은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자료를 탈취해 유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다. 원청업체가 하도급 업체인 중소기업의 기술을 유용한 경우 손해의 3배까지 배상을 하도록 했다. 대기업의 법위반 유인을 사전적으로 억제해 불공정 하도급거래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취지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영미법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독일 일본 등 대륙법 계열의 국가에서 도입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정부와 대기업은 그동안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도입에 반대해왔다. 무엇보다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정면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술탈취 행위에 대해선 이미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와 검찰 고발이 가능하다.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도입되면 하나의 행위에 대해 행정(과징금) · 형사(검찰고발) · 민사(손해배상) 등 세 가지 제재가 이뤄져 과도하다는 것이다. 또 민사소송시 손해액과 배상액을 1 대 1로 정한 현행 민법의 손해배상책임 법리와도 충돌한다.

금전적 부담도 막중하다. 양금승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력센터 소장은 "최근 공정위가 하도급법 위반 기업에 부과하는 과징금 상한선을 크게 올렸는데 손해배상 소송에서까지 3배를 물어줘야 한다면 위반 업체가 내야 할 금액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거액의 배상금을 노린 중소기업이나 법무법인의 소송 남발 우려도 제기된다. 2006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 미국에선 이 같은 소송에 연간 1320억달러가 지출됐으며 이로 인해 자동차의 경우 신차 1대당 500달러의 가격 인상 요인이 발생했다.

중소기업 기술 유용을 어떻게 판단할지 여부도 논란거리다. 이철행 전경련 기업정책팀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술협력이 많은데 거래관계가 끊겼을 경우 기술을 이용하는 대기업을 '유용'이라고 고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번 개정안이 선거를 의식한 정치권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여야가 합의해 밀어붙이니 정부의 반대논리가 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 기업 관계자도 "대기업만 몰아붙이면서 어떻게 동반성장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정치권이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으로 여야가 정치적 타협을 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함께 대기업과 중소기업,정부와 정치권이 도입 여부를 두고 논란을 벌였던 '중소기업에 납품단가 조정협의권 부여' 방안은 일단 제동이 걸렸다. 우선 납품단가 조정 신청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2년간 제도를 운영해본 뒤 실효성이 없을 경우 납품단가 조정협의권 도입을 다시 논의하는 선에서 여야가 합의했다. 납품단가 조정협의권까지 부여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재계의 우려를 일부 받아들인 결과다.

이번 개정안에는 하도급 대금을 삭감하면 '갑'인 원사업자가 감액 이유를 입증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금까지는 '을'인 중소기업이 감액의 부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관계로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하도급 거래에 관한 서면실태조사 결과를 공표하도록 의무화했으며 법 위반 정도가 명백하고 중대한 경우 공정위의 고발을 의무화하는 전속고발제를 강화했다.

김형호/서기열 기자 chs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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