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과실', 민사 `고의'에 의한 사망사고 결론

운전 중 시비가 붙은 상대를 차에 매달고 달리다 떨어뜨려 숨지게 한 운전자에 대해 민ㆍ형사 재판부가 다른 판단을 했다.

형사 재판부는 운전자의 과실을 인정해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로 처벌한 반면, 민사 재판부는 `살인에 대한 고의성이 인정된다'고 본 것이다.

12일 법원에 따르면 김모 씨는 2008년 12월 혈중알코올 농도 0.113%의 상태로 운전하다 사소한 이유로 택시 운전사 박모 씨와 시비가 붙었다.

말싸움 도중 박씨에게 `술 냄새가 난다.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씨는 음주운전 사실이 발각될까 겁이 나 자리를 급히 떠나려 했지만 박씨는 차량 보닛에 엎드린채 와이퍼를 붙잡고 끝까지 버텼다.

김씨는 꼼짝하지 않는 박씨를 떨어뜨리려 빗길 속 곡예운전을 시작해 시속 50km의 빠른 속도로 지그재그로 차량을 몰며 수차례 급가속ㆍ급회전을 반복했고, 결국 힘에 부친 박씨는 아스팔트 도로에 떨어져 숨졌다.
사고 이후 박씨 유족들은 김씨를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로 처벌해줄 것을 경찰에 요청했다.

김씨가 과실이 아닌 고의로 박씨를 사망케 했다는 점이 인정되면 `계약자의 고의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배상책임이 없다'는 보험사의 약관상 보험금을 받지 못할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
애초 살인죄로 입건됐던 김씨는 유족의 바람대로 상해치사죄로 기소됐고, 지난해 형사재판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됐다.

이후 박씨의 유족은 `1억1천여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라'며 김씨가 가입한 자동차 보험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고 1심은 `김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민사20부(장석조 부장판사)는 이 사건에 대해 "보험사는 박씨의 유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보험사의 면책을 인정한 것.
재판부는 "김씨가 고속으로 운전 중인 차량에서 사람이 떨어졌을 때 숨질 수 있다고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점, 도로에 떨어진 박씨를 구조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고의가 있었음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형사재판에서는 검사의 기소대로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했지만, 민사재판에서는 사고 전후 정황을 고려할 때 살인에 대한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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