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적인 비둘기쇼ㆍ연미복 대신, 콘서트 같은 마술쇼로 승부
대학때 마술 배우고 싶어 가출, 1년반 이흥선 문하생 도제수업
책ㆍ영화ㆍ뮤지컬 등서 아이디어, 5년내 라스베이거스 진출 목표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TV 화면에 어김없이 까만 연미복을 차려 입은 마술사가 등장했다. 모자에서 비둘기가 나오고 비어 있던 통에서 토끼가 튀어나오고….



조금 더 센 걸로는 미녀를 반으로 잘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젊고 새로운 마술사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검은 연미복 차림을 고집하지도 않고,모자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어디서 본 듯한 마술도 선보이지 않았다. 대신 마술 공연에 스토리를 입히고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보탰다.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마술쇼를 브랜드화한 최현우와 이은결이 그 주인공.이후 마술은 어린이나 보는 유치한 '장난'에서 어른들이 관람하는 고급 '쇼'로 탈바꿈했다.

최근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마치고 현업으로 돌아오자마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마술연맹(FISM) 월드챔피언십 2009'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오리지널리티상을 수상한 마술사 최현우(31)를 28일 만났다.

▶요즘 마술사들은 선배들과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처음 마술을 시작한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젊은 마술사는 아예 없었어요. 마술 하면 대부분 서커스나 밤무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하급 문화로 취급했죠.저는 마술을 하기로 마음 먹고 두 가지를 결심했어요. 첫 번째는 비둘기 마술을 하지 않겠다는 거였죠.모자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전형적인 마술이죠.남들이 다하는 이런 마술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는 연미복을 입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마찬가지예요. 너무 전형적이라 고리타분한 느낌을 주거든요. "



▶연미복과 비둘기 없이 마술하기가 어떻던가요.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방송 출연 섭외가 들어와도 꼭 까만 연미복을 입고 나오라고 요구하더라고요. 그래서 방송 관계자들과 많이 싸웠죠.저는 검은색 대신 컬러풀한 옷을 입고 다채로운 마술을 선보이고 싶었거든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결국 제 스타일을 인정해주더군요. 그렇게 조금씩 이름이 알려지니까 마술이 고리타분하지 않고,젊은 세대들이 원하는 '쿨한' 감각을 만족시키는 문화라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대학가 마술 동아리들이 하나둘 생겨났죠.전에는 마술을 보여주면 '어떤 속임수를 썼냐'며 따지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신기해하며 즐기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



어떤 계기로 마술을 하게 됐나요.

"고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갔다가 백화점에서 매직숍을 보니 정말 신기했어요. 재미있는 트럼프부터 토끼를 숨길 수 있는 모자까지요. 처음 생각은 단순했어요. 남자라면 누구나 다 하는 생각 있잖아요? '이걸 배워서 보여주면 여자들이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이요. 그런데 일단 배우기 시작해서 이것저것 해보니까 내성적인 성격이 외향적으로 바뀌고 좋더라고요.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



처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준 마술은 어떤 건가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상대방 손에 동전을 쥐어주고 그걸 없애는 마술을 처음으로 반 친구들에게 보여줬어요. 제가 보여주는 마술에 완전히 넘어간 친구가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며 물어왔을 때 짜릿했죠.그 후로 혼자 책을 보고 이것저것 연습하며 실력을 쌓아 나갔죠."



마술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언제였나요.

"대학(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때 직업으로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죠.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본격적으로 마술을 해보겠다고 하니까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부모님도 반대를 많이 하셨죠.마술을 하고 싶다는 일념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출이란 것도 해봤어요. 집을 나와 우리나라 제1호 프로 마술사이신 이흥선 선생님 문하로 들어갔어요. "



처음엔 설거지와 빨래만 했다면서요.

"마술도 완전 소림사예요. 도제 시스템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거죠.무술을 배우려고 들어가면 처음에는 한동안 물 길어오고 밥 하고 그러잖아요. 마술사도 그래요. 밥하고 설거지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다 맡아서 하는 거죠.잠은 연습실 바닥에서 잤고 기술은 선생님 어깨 너머로 살짝살짝 훔쳐보고 혼자 돌아와서 연습하고 그랬어요. 마술도 배우고 학교도 다녀야 하고 학비도 혼자 벌어야 해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죠.그래도 마술하는 것에 완전 미쳐 있어서 즐거웠어요. 1년반 정도 잡일을 하고 나니 선생님이 마술에 대한 전반적인 기술들을 가르쳐주셨어요. 가장 기본이 되는 비둘기를 어떻게 없애는지,사람을 어떻게 자르는지 등등을 배웠죠."



첫 공연은 어땠나요.

"1999년 명지대 축제 때 처음으로 공연을 했어요. 카드 마술과 촛불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이었죠.200명 정도의 관중이 있는 작은 공연이었는데 무슨 종합운동장에서 하는 공연처럼 사람이 많게 느껴지더라고요. 반응은 괜찮았습니다. 자기 또래의 젊은 마술사를 보고 사람들이 신선하다고 느꼈나봐요. 그때 받은 공연료가 15만원이었습니다. "



공연 중에 연인들의 고백 이벤트가 가장 인상 깊다는 평이 많던데요.

"마술쇼를 할 때 중요한 것은 쇼에 스토리를 담는 거예요. 남녀 간의 사랑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잖아요? 그래서 공연할 때면 연인 이벤트 신청자를 받아요. 대부분의 경우 남자친구가 고백을 하면 여자들이 울어요. 한번은 한 남성이 청혼을 했는데 여성이 거절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장난인 줄 알고 '왜 이러시냐'며 다시 물었는데 여성이 완강하게 거절을 하는 거예요. 그러자 남성이 자신의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털어놨어요. 그 여성이 말기암 선고를 받았는데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남자친구가 아닌 남편으로서 함께 하고 싶은데 여자친구가 자꾸 거절을 한다는 얘기였죠.마술공연장에서 고백을 하면 마술 같은 기적이 일어나 청혼을 받아줄 것 같아서 고백한 거라고 얘기했는데 저를 포함한 모든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어요. 정말 영화 같은 얘기잖아요. 거기서 내가 선보이는 마술이 단순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 두 분은 결혼을 했어요.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신부는 하늘나라로 돌아갔습니다만…."



마술사들끼리 아이디어 경쟁도 치열할 것 같아요.

"아이디어는 책을 읽고 영화,뮤지컬을 보면서 많이 떠올려요. '원 소스 멀티유스'인 셈이죠.예를 들어 해리포터에서 컴퓨터 그래픽으로 처리한 '마법'을 '마술'로 보여주는 방법을 찾는 거죠.영화 '프레스티지'를 보면 마술사들이 서로의 마술 비결을 캐내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장면들이 나와요. 목숨 걸고 싸우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아이디어 경쟁이 치열하기는 해요. 마술사들은 자신의 비법을 공개하는 것을 꺼리죠.저도 그래요. 제가 개발한 마술은 제가 죽는 것과 동시에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합니다. 그만큼 애착이 있는 거죠."



마술사의 하루는 어떻게 되나요.

"회사원과 비슷해요. 공연이 없을 때는 아침에 연습실로 가서 하루종일 연습을 하죠.마술을 가르쳐 주는 DVD도 보고 직접 개발하기도 하고요. 1년에 탄생하는 마술만 전 세계적으로 400개가 넘어요. 개발하고 연습하는 일을 반복하는 거죠.공연은 한 해의 절반 정도 있어요. 가장 큰 공연인 연말 서울 공연에서 그동안 연습한 모든 기술을 접합한 최고의 쇼를 선보여요. 그 다음에는 그 레퍼토리로 지방 공연을 하죠."



마술사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5년 안에 제 이름을 건 공연을 라스베이거스에서 올리고 싶어요. 그래서 영어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사람을 자르고 붙이는 천편일률적인 공연이 아니라 저만의 독특한 쇼를 만들 거예요. 최현우 하면 생각나는 마법 같은 마술공연이요. 전 정말 평생 마술만 하며 살고 싶어요. 제가 지금 한국 나이로 서른둘인데 어려 보이잖아요. 원래 동안(童顔)이기도 하지만 술,담배를 안하면서 나름대로 관리한 덕분이죠.죽을 때까지 이 '동안'을 유지해서 관객들에게 멋진 공연을 보여주고 싶어요. 공연이 끝나면 꿈꾸는 듯한 기분으로 관객들이 환상에 취해 집에 갈 수 있도록 말이죠."

글=박민제/사진=양윤모 기자 pmj5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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