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조(趙)의 대장군 염파(廉頗)는 연전연승 명장의 칭송을 들었으나, 조괄이란 풋내기에게 밀려 은퇴했다. 새로 즉위한 도양왕은 선왕의 지주였던 염파를 재기용하기로 작정하고 사람을 보내 근황을 살폈다. 퇴역한 노장군 역시 왕의 사자에게 자신이 건재함을 한껏 과시했다.

'염파는 한 끼 식사에 밥 한 말과 고기 열 근을 먹고,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아직도 쓸모 있음을 보였다(一飯斗米肉十斤, 被甲上馬, 以示常可用). 사자는 돌아와 왕에게 보고했다. "염 장군은 늙었지만 식사를 잘했습니다. 그러나 신과 같이 앉아 있는 잠깐 동안 세 번이나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然與臣坐, 頃之三遺失矣)" 조왕은 염파가 늙었다고 생각하고 결국 부르지 않았다. ' ―《사기 염파인상여열전》

염파의 꿈이 깨진 것은 그를 미워한 곽개라는 자가 사자에게 금품을 주고 그를 깎아내리도록 미리 손을 쓴 때문이라고 사마천은 적고 있다. 염파는 곧 초(楚)의 장군으로 영입됐지만 이렇다 할 공을 세우지 못하고 실의 속에 죽었다. "나는 조의 사람이니 조의 군대를 지휘하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300년 뒤 후한 광무제 때 장군 마원(馬援)은 마침 염파를 쫓아낸 조괄의 후예다. 지방의 반란이 커지자 마원은 62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출정하겠다고 나섰다. 이를 애처롭게 여겨 출정을 허락하지 않는 황제와 고집 센 늙은 장군 사이에 이런 실랑이가 오갔다.

마원 : 신은 아직도 갑옷을 입고 말에 오를 수 있습니다.

황제 : 정말 그런지 어디 한번 보여 보라.

마원이 말 안장에 올라 늠름하게 주위를 돌아보며 건재함을 시위하자 황제는 빙긋이 웃으며 "이 늙은이, 정말 대단하구만"이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 《후한서 마원열전》

'대장부 뜻을 품었으면 궁할수록 더욱 굳세고 늙을수록 더욱 기백이 넘쳐야 한다(丈夫爲志,窮當益堅,老當益壯)'

마원은 젊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하는데, 노익장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재물에 대한 생각도 남달리 컸다. "재화라는 것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중요하지, 안 그러면 돈의 노예일 뿐(凡殖貨財産,貴其能施賑也,否則守錢虜耳)"이라면서 가진 것을 다 나눠 주기도 했다. 그만큼 포부가 크고 열심히 살아서,훗날 남자의 세계에서 대장부의 모범으로 칭송된 인물이다.

늘그막의 마원이 멀리 베트남 원정 중에 편지로 조카들을 훈계한 내용이 전한다. 남의 장 · 단점 들추는 것을 일삼는 그들에게 "남의 단점을 듣더라도 귀로만 듣고 입으로 발설하지 말라"고 꾸짖고 시류에 휩쓸려 정치만 논하는 그들의 경박함을 이렇게 훈계했다.

'돈후하고 검약하며 청렴한 용백고 같은 이를 본보기로 삼아라.그러면 고니새를 새기다가 실패해도 오리는 닮듯이(刻鵠不成尙類鶩) 하다못해 성실한 관리 정도는 될 수 있다. 반면 그저 의(義)만 좇고 작당 지어 세상과 어울리는 두계량 같은 이를 본받으면 천하에 경박한 놈이 되고 말 것이니,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리고 마는(畵虎不成反類狗) 격이다. '

세상살이가 어렵다. 풍요의 뒤에 들이닥친 불황이니 더욱 그렇다. 한창 일할 세대의 취업난도 문제이지만,수명이 길어진 정년퇴직 은퇴 세대의 노후 문제도 심각하다. 이런 때일수록 가난했지만 넉넉한 시대를 살았던 시니어 세대의 노익장을 더 기대하게 된다. 어려울수록 염치를 생명처럼 여기고 럭비공 세태를 웃으며 따끔하게 나무랄 줄 아는 달인(達人)은 삶의 고단함을 덜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우종근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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