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야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어둑해진 서울 여의도 대로변을 가로등에 의지해 걷고 있는데,낮은 톤의 묵직한 자동차 배기음 소리가 밤하늘을 갈랐다.

고개를 돌려 보니 차가운 빛깔의 은색 오픈 카가 신호 대기에 걸려 도로 위에 서 있었다.

잘 빠진 몸매에 작고 낮은 차체.포르쉐 박스터S였다.



포르쉐! 자동차를 조금이라도 좋아한다면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설레기 충분하다.

많은 자동차 애호가들이 드림 카(Dream Car)의 하나로 꼽는 차다.

포르쉐는 그래서 마케팅 때 '차가 아닌 꿈을 판다'고 얘기한다.

포르쉐를 얘기할 때면 독특한 엔진음을 일컫는 '포르쉐 노트'를 빼놓을 수 없다.

노트(Note·음표 또는 악보)라는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엔진음이나 배기음을 단순 소음이 아니라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요소로 승화시켜 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낮게 깔리면서 속이 꽉 찬 포르쉐 노트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도저히 헤어날 수 없다고 해서 '포르쉐 바이러스(Porsche virus)'라는 말도 생겼다.

스포츠 카의 정수를 보여주는 포르쉐는 자동차 천재이자 자동차 역사상 최고의 엔지니어로 불리는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 박사가 만들었다.



1875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그는 작은 전기기계 제작소의 조수로 시작해 다임러 벤츠의 자동차 설계,비행기 엔진 제작 등에 참여했다.

당시의 기술과 노하우는 그의 천재성을 통해 최고의 자동차 모델로 승화됐다.

경영진과의 불화로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포르쉐 박사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포르쉐 박사 자동차·엔진 개발 연구소'를 세웠다.

처음으로 맡은 프로젝트가 바로 대중 소형차 폭스바겐(Volkswagen) 개발이었다.

전쟁광이자 극우 민족주의자였던 히틀러는 포르쉐 박사에게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웠다.

기름 7ℓ로 100㎞를 달려야 하고,어른 2명과 아이 3명을 태울 수 있는 공간을 갖춰야 하며,정비가 쉽고 엔진이 얼지 않으면서 가격까지 싸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포르쉐 박사는 베를린올림픽이 열리던 1936년 모든 조건을 충족한 국민차를 공개했다.

딱정벌레 차로 유명한 '비틀(Beatle)'이다.

비틀은 이후 30년 동안 같은 모양으로 전 세계에 팔리며 역사적인 베스트셀러 모델에 오르게 된다.


1948년 포르쉐 박사의 아들 '페리 포르쉐'는 비틀의 섀시와 엔진 등을 바탕으로 뒷바퀴 굴림 방식(PR·후미 엔진)의 스포츠 카를 탄생시켰는데,그것이 포르쉐 최초의 대량 생산 모델인 '포르쉐 356'이다.

PR 방식은 '911' 등 대표 모델에도 계속 적용돼 포르쉐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포르쉐는 포르쉐 박사의 설립 의지에 맞춰 스포츠 카 브랜드로 차별화하며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1990년대 초반 경영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대표 모델인 911의 부활과 포르쉐 최초의 SUV인 '카이엔'의 선전으로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스포츠 카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포르쉐가 마니아들에게 계속 꿈을 심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욱 수입차포털 GETCHA 대표 choiwook@getch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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