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이화여대 경영대학장


박헌영 이화여대 경영대학장(경영대학원장 겸임)은 한국경제신문이 릴레이 인터뷰로 진행 중인 '한국형 MBA시대'라는 기획타이틀에 불만이 있다며 첫마디를 시작했다. "경영전문대학원(MBA)은 미국이 원조고 현재도 미국 시스템입니다. 국적이 따로 없어요. 그런데 신토불이 MBA라니! 꼭 하려면 '접목형 MBA'가 어떨까 합니다."

그는 지난 25년간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MBA 과정 교수로 재직하다 올해 초 이화여대 MBA 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장으로 취임했다. 그래서인지 '미국에서는'이라는 말을 자주 덧붙였다. 은연중에 "이대는 '오리지널' MBA를 추구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했다. 곽수근 서울대 경영대학장이나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이 '한국적 특화'를 주장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지난 25일 이화여대 신세계관 경영대학 학장실에서 기자를 대면하자마자 박 학장은 미리 준비한 메모장을 들고 이대MBA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앞서 한경에 실린 MBA학장들의 인터뷰 내용을 빠짐 없이 읽어봤다는 그는 이대MBA가 추구하는 '우머노믹스(여성주도경제론)'의 차별성에 대해 강조했다.

-미국에서 MBA 강의를 오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미국에서 듣던 것과는 차이가 많네요. 국내는 아직까지 경영대학원에 왜 '전문'자를 붙여 경영전문대학원,즉 MBA라고 부르는지 개념조차 서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육인적자원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영전문대학원의 정확한 의미부터 알고 규제를 해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리지널 미국식 MBA의 특징은 뭡니까.

"시장 '오리엔티드(밀착)'형 MBA가 진짜 MBA죠. 시장에 따라 계속 변하는 게 MBA입니다. 10년 전의 MBA와 지금의 MBA는 달라야 겠지요. 시장 상황이 변해 기업의 요구가 바뀌면 이에 따라 MBA도 변해야 겠지요. MBA는 철저히 시장의 요구에 따라 가야 합니다. 제아무리 노벨상 수상자가 교수라도 시장을 외면해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예를 들겠습니다. 일단 케이스를 만들면 교수들에게 가져가지 않습니다. 기업들에 보여주고 평가를 받죠. 기업에서 좋다고 판정하면 인정받는 겁니다. 그것이 전부이고 절대적입니다."

-국내 교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뭔가요.

"비즈니스에는 정답이 없다. 정답을 찾아가는 길을 가르쳐줘라. 정답을 내야 유능한 교수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라고 강조합니다. 학생들의 창발성을 길러내고 도전정신을 함양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알아내게 해야 합니다. 정답은 자연과학에서나 가능합니다. 나도 모르겠다. 함께 생각해 보자는 열린 자세가 중요합니다."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점은 뭡니까?

"학생들에게는 창업하는 자세로 임하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10억원이 있다면 이 돈을 가지고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공부하라는 거죠. 주어진 상황과 조건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 바로 공부입니다."

-이대 MBA가 차별적으로 구현하려는 것은 뭡니까.

"MBA는 어떤 의미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포천 500대 기업에 들어가는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로부터 얘기를 들어 보면,그들이 성공한 이유로 꼽는 첫 번째가 바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일례로 당신이 CEO와 30초 동안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이동안 CEO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말이 전부입니다. 이를테면 누군가 목사님한테 묻습니다. 목사님 기도하면서 담배를 피워도 됩니까. 목사는 당연히 안 된다고 했겠지요. 그런데 담배를 피우다가 기도해도 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럼 목사님는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비즈니스도 말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커뮤니케이션은 여성이 유리하다고 봅니까?

"선천적으로 그렇다고 봅니다. 그 다음 요즘 경영학의 새로운 화두로 등장한 윤리경영도 여성이 유리합니다. 우리는 조만간 MBA 시험 전체를 무감독으로 치를 예정입니다."

-소통력과 윤리에서 남성을 압도한다면 21세기는 확실히 여성의 시대라고 봐야겠군요.

"이제 99%의 영감과 1%의 땀이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99%의 땀이 좌우하던 시대엔 남성이 지배했지만 그 시대는 갔습니다. 땀만 흘려서는 과거만 보입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머노믹스(Womenomics)'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먼(Woman)'과 '이코노믹스(Economics)'의 합성어죠. 21세기엔 여성이 경제활동을 주도하고 그 리더그룹에 이대MBA 출신이 있도록 한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이화노믹스(Ewha+Economics)'를 만들었습니다."

-아직 우리 여성들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적극성이 떨어집니다. 굳이 미국 여학생들과 비교하자면 그들이 훨씬 저돌적인것 같습니다. 우머노믹스 시대가 빨리 오려면 우리 여성들이 이런 태도부터 고쳐야 합니다. 남성들이 하는 것의 95%만 해도 잘 한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선 곤란합니다."

-여성의 차별점을 극대화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이 있습니까?

"CEO멘토 교수제가 있습니다. 국내 유수기업의 CEO 들을 교수로 모셔와서 강의는 물론 학생 개개인에게 1대1로 멘토 역할을 하도록 합니다. 학생들은 여성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서 CEO들로 부터 생생한 경영경험담 등을 제대로 배우고 CEO들도 아주 좋아합니다. 졸업생 리콜제도 도입했습니다. 한 번 이화 MBA면 영원한 MBA죠. 졸업 후에도 언제든지 다시 와서 원하는 과목을 공짜로 들을 수 있도록 할 생각합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언제든지 재충전을 할 기회를 주는 거죠."

-정말 공짜입니까.

"등록금은 없지만 대신 기부금을 내지 않을까요(웃음)."

-교육부의 MBA 평가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교육부의 일률적인 평가는 정말 곤란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간섭은 대학이 자초한 측면도 있습니다. 사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교육 시장이 완전히 열렸다면 확실한 시장경쟁이 되고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됩니다. 그런데 어느 대학도 시장 완전 개방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교육부 간섭반대-자율경쟁을 주장하면서도 막상 시장 완전 개방을 주장하지는 못합니다. 완전경쟁에 자신이 없는 거죠. 대학들은 정부의 간섭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측면이 많다고 봅니다."

대담=이동우 부국장/정리=성선화 기자/사진=김병언 기자 lee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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