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식 폭포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물소리를 뒤로 하고 건물로 들어선다. 경사진 유리 천창(天窓)의 '아트리움(atrium)'식 중앙홀이 나타난다. 대리석으로 만든 벽면과 바닥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G라운지.

야마하 그랜드피아노에선 누군가가 연주를 시작했고 다채로운 디자인의 의자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아무렇게나 앉아 책을 보는 사람들, 바로 옆 버거킹과 샌드프레소에서 간식과 커피를 즐기는 이들의 표정이 여유롭다.

700석 규모의 열람실과 도서관에는 통유리 창으로 햇살이 쏟아진다. 창 밖 곧게 뻗은 대나무 화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어느 멋진 미술관이나 쇼핑몰로 착각할 만한 이곳은 고려대학교 이공계 학생들이 꼭 한 달 전부터 생활하고 있는 지하캠퍼스 '하나스퀘어'다.

'캠퍼스 디자이너'로 불리는 고려대 장동식 관리처장(50·정보경영공학부 교수)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다.

실제로 이곳을 방문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져 벌어진 입을 다물기 힘들다.

강의실 몇 개와 주차장을 들여놓은 어두컴컴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자연채광이 뛰어나고 실내 인테리어는 한 마디로 예술적이다.

하나스퀘어는 1999년 컨셉트를 잡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장 처장의 아이디어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자연과 예술이 조화된,이공대생들의 동선(動線)을 완전히 바꿔버릴 '허브'개념을 창조했다"고 회고했다.

장 처장은 2002년부터 고려대 관리처장직을 맡아 최근 네 번째로 유임된 경우다.

김정배·한승주(총장 서리)·어윤대 총장 등으로 바뀌는 동안 무려 28채의 교내 건물을 증·신축하고 리모델링하는 데 '선봉장'으로 나섰다.

그가 집행한 예산만 시가로 7500억원(하나스퀘어는 400억원)에 이를 정도.그는 "MIT(매사추세츠공대) 스탠퍼드 하버드 예일 NYU(뉴욕대) 라이스 등 미국의 유명 대학을 수도 없이 찾아다니며 직접 사진을 찍고 연구했다"며 "장점을 가져 오면서도 우리만의 독특함이 살아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나스퀘어의 특징은 몇 가지로 압축된다.

일단 '자연과의 소통'이다.

'선큰 가든'(sunken garden·지하로 통하는 건물의 계단 공간을 이용해 만든 정원) 덕분에 지하로 햇볕이 충분히 들어온다.

주차공간으로 방치됐던 3000여평의 지상공간은 잔디와 10만그루 이상의 산수유 스트로브잣나무 소나무 등을 심어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예술적인 실내 분위기도 독특하다.

그랜드피아노가 놓인 라운지는 인터넷으로 신청한 학생이라면 누구나 직접 연주할 수 있는 콘서트홀이고 각종 밴드와 댄스팀이 사용하도록 한 음악실,영화를 상영하는 DVD룸은 차라리 멀티미디어영상대학이나 예술대학에 더 가깝다.

이 밖에도 국내 대학에 최초로 입점한 영풍문고,샌드프레소 커피숍,버거킹과 빵집, 라커룸 등이 완벽한 부대시설을 이루고 있다.

이공계 학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학교 게시판이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공대 등록금 1위로 비싸게 받더니 요런거 만들어 놨네.다닐맛 난다'(치우),'저는 감사하고 학교 다닐랍니다'(복학생) 등 인문대에 비해 전통적으로 '서자(庶子)적 피해의식'을 갖고 있던 자연·공과계 학생들의 감탄이 쏟아졌다.

새로운 인프라를 바탕으로 한 문화적 변화는 학교의 이미지를 크게 높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서윤호 공과대 부학장(48)은 "고려대의 캠퍼스 혁신이 학문적 성과와 더불어 수험생들 사이에서 대학의 인기도 높이고 있다는 얘기들을 내부적으로 하고 있다"며 "벌써부터 공대 지망 고등학생들이 구경을 온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한편 모 사립대학의 관리처장은 "몇몇 대학의 관리처장들이 모이면 장 교수한테 '당신 때문에 못살겠다'는 농담을 한다"며 "고대는 다른 대학들의 캠퍼스 리모델링 '붐'에 자극제가 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장 처장의 답변은 겸손하다.

그는 "확 달라진 고대 캠퍼스는 재단과 총장,후원기업,자문을 아끼지 않았던 교수님들,열성적인 설계·시공사,소음과 불편함을 감수해준 학생들이 만든 공동 작품"이라며 "대부분 준도심 지역에 자리잡은 서울의 대학 캠퍼스들은 앞으로 무한하게 진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