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이 8월 13일 개막하는 '한국미술 100년'전 1부를 통해 최근 발굴한 최지원(崔志元)의 목판화 '걸인과 꽃'을 일반에 처음 공개한다.

이 작품은 1939년 18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출품해 입선한 작품으로 그동안 실물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은 채 한국인의 판화로는 처음으로 선전에 선보였다는 기록만 전해왔다.

목판인쇄술과 같은 뛰어난 활자문화의 전통을 간직한 우리의 역사 속에 서구적 기법을 이용한 현대판화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이후. 19세기말 석판화 기술이 도입되면서 다량으로 인쇄됐던 벽장그림은 수작업에 의존한 것이지만 창작판화라기보다 인쇄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이전에 1910년 나혜석이 월간지 '개벽'을 위해 단색목판화를 제작했다든지, 배운성이 베를린에서 개최된 망소비 만국목판화전(1936년)에서 명예상을 수상했다든지 하는 기록들만 남아 있을 뿐이어서 1958년 '한국판화협회'가 결성되던 무렵을 한국현대판화의 출발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묻혀 있던 최지원의 '걸인과 꽃'이 새로 발굴됨에 따라 한국현대판화의 출발점은 적어도 최지원이 선전에 이 작품을 출품한 1939년으로 앞당겨지게 됐다.

그동안 개인이 소장해온 '걸인과 꽃'은 제목처럼 꽃을 든 헐벗은 여인 뒤쪽으로 물동이를 이고가는 소녀의 모습을 대비시킨 단색목판화다.

호가 '주호'(株壺)인 최지원은 정확한 생몰연대조차 알려지지 않았으나 집이 가난해 평양의 광성고등보통학교 2학년때 중퇴하고 독학을 하면서 판화 제작에 몰두한 작가로 일본 사람들로부터 '한국의 밀레'라는 평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수근, 장리석 등과 교유한 그는 유난히 작은 키 때문에 맞선 자리에서 번번이 퇴자를 맞았고 여기에 화가 나 독주를 마시는 바람에 위경련으로 죽었다고 서양화가 황유엽 씨는 증언한 바 있다.

황씨는 최지원의 집에 가보면 농짝 서랍 뒷면의 판이라는 판에는 전부 판화로 메워져 있었다고 회고했다.

'한국미술 100년'전을 통해서는 개인소장자로부터 대여해온 김기창의 유화 '해녀'(1936년작), 김규진의 수묵화 '세죽'(연도미상) 등도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해녀'는 1936년 제 15회 선전에서 입선을 차지한 작품으로 1999년판 전작 도록 '운보 김기창'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김기창은 77년 정우사간 '나의 사랑과 인생'에서 목포 바닷가의 해녀 4명을 그린 뒤 멋진 배경이 필요해 1월말 함흥의 바닷가 절벽을 찾아 5일간 눈발과 거친 바람을 맞아가며 고생 끝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우리 근.현대 미술 100년을 조명해보는 이 전시의 1부에서는 조선왕조의 몰락부터 개화기, 일제침략, 광복을 거쳐 4.19 이전까지의 회화와 조소, 공예, 디자인, 광고, 사진, 영화, 건축, 만화 등 800여 점이 전시된다.

1부는 10월 23일까지 계속되며 2부는 내년도에 열릴 예정이다.

(서울=연합뉴스) 류창석 기자 kerberos@yna.co.kr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