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근무를 마치고 오는 20일 귀국하는 토머스 해리스 주한영국대사는
"노동법은 한번 개정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수정.
보완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리스대사는 "비교적 모범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영국의 노사관행이 정착
하는데도 10여년이란 긴 시간이 걸렸다"며 "단시일내에 뭔가를 얻겠다는
조급한 생각을 버려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외국인투자유치전략에 관해서도""머리"로 받아들이는 자세보다 "가슴"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조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영국 상공부내 신설된 "수출진흥국" 초대국장에 내정된 그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국가와의 투자및 무역교류증진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필규 국제1부장이 귀국준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해리스대사를
중구 정동 대사관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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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생년월일: 1945년 2월6일
<> 학력: 캠브리지대학 곤빌&키스칼리지
<> 경력: 69년 주일 영국대사관 근무
72년 상공부 극동지역 상무담당
78년 상공부 장관 수석보좌관
83년 주워싱턴 영국대사관 상무담당 영사
94년 주한국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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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외교관과는 달리 가장 바쁘게 현장을 뛰어다닌 "마당발" 대사로
소문나 있습니다.

"새로운 대사상"을 세웠다는 평가도 받고 있지요.

글로벌경제시대에 맞는 외교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21세기 외교관들의 업무는 정치나 군사문제에만 국한돼서는 안될 것입니다.

국제관계가 과거처럼 단순하게 전개되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외교관들은 전통적인 업무외에 환경 마약 무역 투자 과학 교육등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을 것입니다.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방법도 바뀌어야 합니다.

상대국의 정치지도자들만을 상대로 외교활동을 펼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
이지요.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젠 그 나라 국민들까지도 설득시켜 이해를 구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구사
해야 합니다"


-"경제 외교관"으로서 한국경제의 앞날을 어떻게 진단하는지요.

"한국경제는 2%대의 낮은 실업률속에 탄탄한 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최근들어 무역적자확대 연쇄부도등으로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매우 낙관적입니다.

높은 교육수준과 저축률, 빠른 기술습득력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한국경제의 성장잠재력은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추가적인 시장개방과 규제완화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전제조건
입니다만.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경제상황변화에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다는 점도 꼭
지적하고 싶은 대목입니다.

경제가 조금 나빠지는 조짐만 보이면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야단
법석을 떱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죠.

최근들어 국민들 사이에 경제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이 확산되는 것도
이같은 국민정서와 무관하지 않지요"


-60년대와 70년대 "유럽의 환자"로 불리던 영국이 80년대초 경제개혁을
통해 "유럽의 모범생"으로 우뚝 섰습니다.

영국경험에 비춰 한국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경제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까요.

"조언을 할 입장은 아니지만 영국경험을 위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잦은 노사분규와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몸살을 앓던 영국경제가 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민영화와 합리적인 노사관계확립등으로 요약되는 경제개혁
덕분이었습니다.

정부규제와 간섭을 최소화하는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 것도
경제회생에 큰 도움이 되었고요.

현재 1천5백개의 독일기업이 독일공장을 폐쇄하고 영국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물론 고통이 따르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10여년이란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힘든 작업이었지요.

미국속담에 "고통이 없으면 소득도 없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경제개혁에 수반되는 고통을 참고 이겨낸 결실을 지금 영국 국민들이
수확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한국은 현재 노동법개정을 둘러싸고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해결방안이 없겠습니까.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우리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영국은 "융통성있는 고용시장"에 촛점을 맞춘 새로운 노사관행으로
30여년전 세계최악의 노사분규국이라는 오명을 말끔히 씻어냈습니다.

한꺼번에 획기적으로 법개정을 시도할 경우 노사양측 모두로부터 거센
반발을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영국노동법은 오랜 기간을 두고 여러차례 수정.보완작업을 거쳐
탄생된 것입니다.

영국은 노조활동에도 정부간섭을 최소화했습니다.

복수노조설립을 허용해 노조선택권을 노조원에게 일임했고요"


-영국은 금융개혁도 성공적으로 추진했습니다.

"금융개혁의 골자 역시 개방과 규제완화입니다.

그 결과 런던은 세계금융시장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런던외환시장은 뉴욕과 도쿄를 합친것보다 규모가 더 큽니다.

미국계 은행들이 뉴욕보다 런던에 많이 진출해 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한국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하면서 자본이동과 시장개방에 관한
규제철폐를 약속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게 있다면 시장개방이 좀더 일찍 그리고 보다 광범위하게
이뤄지지 못했다는 겁니다.

정부보호아래서는 금융기관이 절대로 국제경쟁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온실속의 화초인 셈이죠. 현대 삼성등 제조업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세계시장에서 경쟁업체와 당당히 맞서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은행 보험등 금융회사들도 하루빨리 이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될 겁니다"


-한국정부의 기업정책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보는지요.

"지금까지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한국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직도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닌것 같습니다.

규제완화작업은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합니다.

이는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부패등 사회적 문제까지도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규제나 간섭이 없다면 자연적으로 부패도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조정역할이 없을 경우 한국처럼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
에서는 중복투자등으로 인한 비효율도 심각할텐데요.

"그 점에 대해선 자유시장경쟁체제에 맡겨진 미국 영국 호주등과 정부의
간섭이 개입된 독일 일본 프랑스경제를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기업환경이 급속히 변화하는 정보화시대에 과연 어느쪽이 좀더
효율적이고 국제경쟁력을 갖춘 경제체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느냐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일본은 최근 몇년간 낮은 경제성장으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독일 프랑스 등은 높은 실업률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반면 영국은 실업률이 독일의 절반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독일과 달리 5년연속 견실한 경제성장도 이룩했고요"


-영국은 외국기업들의 투자천국으로 발돋움했습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었습니까.

"우선 영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해외투자를 많이 하는 나라
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처럼 영국 경제정책은 글로벌지향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외국기업들의 영국내 투자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게 되었던거죠.

물론 최근 몇년동안 유럽의 전반적인 경기침체와는 대조적으로 영국경제가
꾸준히 성장한 것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영국과 비교해 한국의 외국기업유치전략의 문제점이 있다면.

"한국의 사정은 매우 다릅니다.

일본침략등 역사적 배경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난 30년동안 한국은 외국기업
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 왔습니다.

한국정부도 몇년전부터 외국기업을 적극 유치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방시점이 너무 늦지 않았나 싶습니다.

임금인상등으로 한국은 비용측면에서 더이상 매력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게다가 외국기업유치에서 경쟁국이라 할 수 있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등은
오래전부터 개방정책을 추진해 한국을 저멀리 따돌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외국기업투자가 경제활성화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데
"머리"로는 인식을 하면서도 "가슴"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적인 예로 건설교통부는 매년 외국기업이 한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규모를 여의도크기에 비교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외국기업입장에서 보면 이는 단순한 자료발표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마치 영업활동에 필요한 부동산을 소유하는것 조차도 큰 부담을
느껴야 하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듯한 인상을 떨칠 수 없습니다"


-대사는 기회있을 때마다 외국인직접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이제 한 나라의 경제력척도는 상품및 서비스교역량에 있지 않습니다.

얼마만큼 외국투자를 끌어들이고 또 해외투자를 늘리느냐가 그 나라의
국제경쟁력을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한국은 이 점을 간과한 것 같습니다.

한국기업들도 최근들어 중국 베트남등지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만 국내
총생산액(GDP)대비 해외투자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합니다.

일본의 3분의1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경제규모가 비슷한 대만 싱가포르에 비교해서도 낮습니다"


-유럽통합과 관련 영국내 여론이 찬반으로 나눠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참여여부는 외국기업유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고요.

영국정부의 공식입장은 어떻습니까.

"영국은 유럽통합개념을 제안한 국가로 이를 적극 지지하고 있습니다.

유럽통합으로 영국도 큰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최근 영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점은 99년 화폐통합참여를 둘러싼
것으로 유럽통합과는 별도의 문제입니다.

현재 영국정부는 브뤼셀에서 진행중인 화폐통합에 대한 각국간 협상이
끝나는 6월 이전에는 화폐통합참여에 대한 결정을 유보하겠다는게 공식입장
입니다.

사실 화폐통합참여를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EU 회원국들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매우 불투명합니다.

따라서 화폐통합이 늦춰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국주재 외국대사중 가장 "일벌레 대사"중 한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건강관리도 중요할텐데요.

"등산을 무척 좋아합니다.

서울근교에 아름다운 산들이 많아 서울생활을 더 좋아했는지도 모릅니다.

테니스도 즐기는 편입니다.

골프는 원래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특히 서울에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 매력적인 운동은 아니라고 봅니다"


-부인의 내조가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안사람은 대만출신으로 일본에서 외교관생활을 처음 시작했을때
만났습니다.

아내는 그때 일본에서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미인이었죠.

그래서 제가 많이 따라 다녔어요.

아내 덕분에 동양적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을 많이 이해해 비교적 큰 탈없이
서울생활을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둘 사이에 아들만 셋 뒀습니다.

한국적 사고방식에서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었죠.

학생인 막내만 빼고는 모두 장성해 은행원과 장교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정리=김수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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